
사드(THAAD) 배치 이후 지난 10여년 간 한중 관계는 한국 경제에 돌발 변수로 작용해 왔다. 콘텐츠와 유통, 배터리, 반도체 장비 등 산업 전반에서 비공식 규제와 행정 지연이 반복되면서 기업들은 예측 불가능한 ‘중국 리스크’를 감내해야 했다.
최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은 장관급 정례 협의체 재가동, 산업단지 협력 강화, FTA 2단계 협상 추진 등 경제 협력 구조를 본격적으로 정비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업들은 복잡한 규제 환경과 글로벌 지정학적 변수 속에서 전략적 판단을 요구받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일부 완화될 수 있는 기대 속에서도 이제부터가 진짜 ‘실전’이라고 입을 모은다.
11일 청와대 등에 따르면 4~7일 이 대통령 중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한중 정상은 글로벌 공동 도전 대응을 위한 과학기술혁신 협력에 관한 MOU, 디지털 기술 협력 MOU, 중소기업과 혁신 분야 협력 MOU, 식품안전협력에 관한 MOU 등 15건 MOU를 체결했다. 한국 산업통상부와 중국 상무부는 정례 협의체를 구축해 경제·통상 협력 의제를 관리할 방침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한중 정상회담은 한중 경제협력 물꼬를 텄다는 의미가 있다.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뒤 얼어붙은 양국 관계가 10여 년 만에 해소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당장 지난해 9월 시행된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시작으로 중국 당국의 한한령(한류 제한 조치) 완화 기대감이 커졌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 교수는 “중국이 미국, 일본과 마찰을 키우고 있는 만큼 우방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적 친밀감이 있는 국가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번 한중 정상회담이 우리 경제에 즉각적 영향을 미칠만한 성과를 낸 것은 아니지만, 향후 무역과 경제 등에서 양측이 협력할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진단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도 "사실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는 크게 변한게 없는 상황이나 경제분야는 한번 얘기를 해보자라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면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당시 만남때와는 달리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한중 경제협력 확대가 인공지능(AI)과 로봇, 반도체 등 전 세계가 혈안을 올리는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에 큰 이득을 가져다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경계감도 적지 않다. 중국이 당국 주도로 ‘기술 굴기’를 추진한 뒤로 한국과 중국이 첨단산업에서 기술과 인력을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는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는 중국 반도체회사로 이직하며 국내 기업 핵심 기술을 빼돌려 유출한 전직 삼성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 교수는 “중국은 한국보다 투자 규모도 훨씬 크고 발전 속도도 빠르며 중국 반도체 기술이 한국을 앞질렀다는 국내 연구 결과까지 나오고 있다”며 “드론과 로봇, 이차전지 등도 기술이 초추격 관계까지 좁혀진 만큼 한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서 차별적 경쟁력을 가질 공간을 확장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동맹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밀착이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둔 갈등을 빚고 있다. 글로벌 역학 구도상으로도,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도 복잡하게 얽힌 공급망 상으로도 실질적 경제협력까지 나아가기에는 장애물이 많다는 뜻이다.
황 교수는 “미국은 원칙적으로 한국이 중국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는 것 자체를 원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 대통령의 방중 역시 다소 파격적인 면이 있으며 앞으로 한국이 우려해야 할 부분은 한중 관계보다는 한미관계다. 대미 무역 등에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실용 외교 관점에서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통해 전략적 리스크를 관리하면서, 경제적 기회를 점진적으로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김 교수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기반해 통상을 이어가는 동시에 중국의 일본 희토류 수출 제한과 같은 불확실성이 없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