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된 것만 11건...고소 잇따라 피해규모 더 커질듯

평범한 가정주부가 시세보다 싸게 아파트를 살 수 있게 해주겠다며 지인들을 속여 수백억 원대 부동산 사기를 벌인 혐의로 구속돼 재판받고 있다. 학부모 모임을 통해 퍼진 이번 사기 사건은 현재 재판 중인 사건만 11건에 이르며, 피해액은 최소 140억 원으로 추산된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이정희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40대 박모 씨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가정주부인 박 씨는 2022년 말부터 3년간 서울과 경기 일대를 오가며 "돈을 맡기거나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넘기면 시세보다 싸게 새 아파트를 살 수 있게 해주겠다"며 지인들로부터 거액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수십 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에 넘겨진 사건만 11건이다. 경기 부천 소사경찰서에서만 관련 사건 7건이 추가로 송치될 예정이며, 경찰과 검찰에도 고소가 잇따르고 있다. 아직 집계되지 않은 피해 사례까지 합치면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검찰 공소장과 피해자 진술에 따르면 박 씨는 학부모 모임을 통해 피해자들과 가까워진 지인들을 매개로 접근했다. 지인들은 자녀 교육이나 재테크 상담을 계기로 신뢰를 쌓은 뒤 "박 씨는 부동산 수완이 뛰어난 사업가"라며 그를 소개했다. 박 씨와 연루된 일부 지인도 공범으로 함께 피소됐다.
일부 지인은 등기필정보와 부동산거래계약신고필증, 아파트 매매계약서를 보여주며 "시세 12억 원대 아파트를 박 씨 도움으로 7억 원에 샀다"며 박 씨를 통해 아파트 매입 '투자'에 참여하라고 권했다.
박 씨는 피해자들에게 "돈을 맡기면 시세보다 싸게 아파트 소유권을 이전받게 해주겠다"며 구체적인 단지명과 금액을 제시했다. 한 피해자에게는 "3억 원이면 서울 영등포구 A 아파트, 7억 원이면 목동권 B 아파트까지 두 채를 넘겨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A 아파트 실거래가는 12억~14억 원, B 아파트는 13억~16억 원 수준이었다.
망설이는 피해자에게는 직접 전화를 걸어 결정을 재촉하기도 했다. 한 피해자가 "자금 마련을 위해 남편 소유 아파트를 급매로 내놨다"고 하자, 박 씨는 "팔지 말고 후순위 담보대출을 받으면 된다"며 대출을 종용했다.
피해자가 우려하자 박 씨는 "내 신분증과 인감도장, 담당 변호사 연락처도 주겠다"며 신뢰를 유도했다. 또 "소유권을 취득하지 못하더라도 투입한 금액 이상은 돌려주겠다"는 말로 피해자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송금된 돈은 실제 부동산 거래로 이어지지 않았다. 박 씨는 아파트를 매입하거나 소유권을 이전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으며, 자금은 모두 본인 계좌로 들어갔다.
또 다른 피해자는 "학부모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이 소개해 줘 믿었다"며 "그 지인이 등기부등본을 보여주며 추천했고, 몇 차례 거래할 때 문제없어 그대로 믿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기 사건의 상당수가 지인 관계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사기는 사람의 신뢰를 이용하는 범죄"라며 "특히 학부모나 지인 관계처럼 신뢰가 쉽게 형성되는 경우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지난달 29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서 박 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며 "11월 안에 변제 계획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 방안은 내놓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구체적인 계획을 말해달라"고 묻자 "지금으로서는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해 회복 여부가 양형의 핵심"이라며 "선처를 받으려면 피해 회복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