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공공시설 등 개발여지 아직 있어
‘강한 규제’보다 ‘좋은 공급’ 고민을

정부가 15일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새로운 규제 카드를 내놨다. 이번엔 ‘15억 원 이상 주택은 4억 원 이하 대출 허가제’를 중심으로, 서울 전역을 부동산규제지역으로 묶었다. 취지는 분명하다. 급등하는 집값을 진정시키고, 서민의 주거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 같은 정책은 근본 처방이 될 수 없다.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은 규제 중심의 대책은 단기적 시장 왜곡만 낳을 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집값 불안을 키우는 악순환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대다수의 국민은 지난 진보정권 시절의 ‘규제의 역설’을 한 차례 학습한 바 있다.
지난 수년간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정책을 돌아보면 규제 일변도의 한계가 분명히 드러난다. 대출 규제, 세제 강화, 다주택자 압박, 청약 자격 제한 등 다양한 통제 장치가 쏟아졌지만, 서울 집값은 꾸준히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다.
규제가 강화될수록 실수요자들은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는 게 그동안 부동산 대책의 경험칙이다. 자금 여력이 있는 계층만 규제를 뚫고 시장에 진입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결국 정책이 의도했던 ‘주거 안정’은 실현되지 않았고, 주택 시장의 양극화만 초래했다.
대출규제가 흘러 나오면서 현장에서는 규제정책이 발표되기 전에 계약을 완료하기 위해 전쟁터처럼 움직이는 일도 벌어졌다. 정부 규제정책의 효과는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규제는 또 다른 규제를 낳아 궁극적으로 시장만 교란시킨다. 부동산정책에서 규제는 최소화해야 한다.
집값은 단순히 통제한다고 떨어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 위에서 형성되며, 장기적으로는 공급 부족이 가격의 근본적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서울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인구 밀도와 일자리 집중도를 가진 지역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집값은 안정적이었다. 이유는 뉴타운정책을 통한 공급이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는 주거 수요가 반드시 생긴다. 이를 억제하기보다는 수용할 수 있는 주택 공급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수도권의 신규 주택 인허가 물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재건축·재개발 규제로 도심 공급은 꽉 막혀 있고, 그 사이 기존 주택의 희소성이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정부가 진정으로 집값 안정을 원한다면, 수요 억제보다 공급 확대라는 구조적 해법에 눈을 돌려야 한다. 서울 내부에는 여전히 잠재적인 개발 여지가 있는 곳이 많다. 노후 공공시설이나 저밀도 재건축 구역, 역세권 복합 개발 등을 통해 충분히 새로운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재건축 부담금 완화나 용적률 상향 같은 규제 완화 정책은 단기적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안정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공공주택의 질적 개선과 중산층을 위한 공공 분양 주택 확대도 병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공급량’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계층별 수요를 세분화해 주거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또한 주 52시간 근무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조선업이나 건설업에서 공사기간 중에 드는 비용이 엄청나다. 1조짜리 프로젝트라면 조달금리를 10%로 잡으면 하루 이자만 하더라도 2억7000만 원이 넘는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고 난 뒤에 분양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현장에서 자주 공사가 중단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주택 가격으로 그대로 전가되고 있다.
공기가 하루만 늦어지면 비용은 가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고 안전사고가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규제는 분양가 상승만 초래할 뿐이다.
집값은 결국 시장경제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수요가 꾸준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공급의 문을 닫는다면, 가격 상승은 막을 수 없다. 정부가 진정 서울의 집값 안정을 원한다면, 규제라는 단기 처방 대신 도시 구조를 새롭게 설계하는 장기 전략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시장은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현실을 인정하고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할 때, 비로소 안정된 주거 시장이 가능해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라 ‘더 나은 공급 구조’다. 규제의 이름으로 시장을 누르는 대신, 국민이 살고 싶은 도시를 함께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것이 서울을 위한,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진짜 부동산 정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