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폭로 자체는 저널리즘의 본령을 실현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민주사회에서 언론이 정부의 비밀작전, 특히 민간인 희생이 뒤따른 작전을 취재·보도하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어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시점’이다. 아무리 정당한 보도라 해도 타이밍이 이상하면 의심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번 폭로가 나온 날짜는 김 위원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한 자리에 서는 역사적 장면을 연출한 지 이틀 후였다.
더 주목되는 대목은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에서 단순히 북·중·러의 결속을 다지는 데 그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의 회동에서 북미 정상회담 재개 가능성에 대한 사전 의견 조율을 시도했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1기 당시에도 김 위원장은 북미 정상회담 직전에 시 주석을 만나 전략을 논의한 전례가 있다.
이에 NYT의 폭로를 단순한 과거 사건의 재조명으로만 볼 수 없다. 심지어 정치적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폭로가 나오면서 북한은 즉각적으로 미국을 강력히 비난할 명분을 얻게 됐고 북미 간 대화 시도가 좌초될 수 있었다. 우연하게도 NYT의 폭로 하루 전날 미국 조지아주에서 한국인 근로자 300여 명이 체포된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이민단속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이 워낙 큰 파문을 일으켜 뉴스를 뒤덮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 사건이 없었다면 NYT의 보도는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언론의 본연의 역할은 ‘사실 보도’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한반도처럼 전쟁과 평화가 교차하는 미묘한 지역에서는 언론 보도가 실제 국제정치에 미치는 파장이 막대하다. 하다못해 폭로 시점을 조금만 앞당겼거나 늦췄다면 이런 의심은 제기되지 않았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이 파국으로 끝나기 전에도 일부 언론은 회담이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예고 기사’를 연이어 내놓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으로 회담장을 떠나버렸다. 언론의 예측성 보도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 것이다. 이번 NYT 보도 역시 시점에 따라 북미 간 협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은 단순히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세계적 과제다. 또 평화는 한순간의 오해와 자극적인 폭로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언론이 정부를 감시하고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미묘한 균형 속에서 때로는 신중함이 그 어떤 특종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닐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