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20대는 삼성전자도 안 사요.”
과거와 달라진 투자자들의 행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 이후 한국 증시에 뛰어들며 이른바 1차 ‘동학개미운동’을 이끌었던 투자자들이 이제는 모바일로 주식을 사고, 유튜브로 공부하고, 상장지수펀드(ETF)로 분산투자까지 수행하는 세대로 진화했다. 업계에서 “개미의 질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개인투자자의 변화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코스피 5000’ 시대를 논의하는 현 상황에서 이들의 전략적 진화는 시장의 체력과 방향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상장사 개인주주는 2019년 612만 명에서 2021년 1374만 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2024년에도 1410만 명으로 굳어져 팬데믹 당시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이 그대로 증시에 남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청년 투자자(30대까지)는 2019년 155만 명에서 2024년 480만 명으로 5년 만에 3.1배 늘며 주요 개인투자자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비중은 34.1%로 팬데믹 당시에는 비중이 40.5%까지 확대됐다가 다소 줄었지만, 은퇴 자산가로 볼 수 있는 60대 이상 투자자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개미 투자자’의 중심이 MZ세대로 이동했다는 말이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20~30대의 자산 형성 전략은 저금리 기조와 고용 불안정이라는 구조적 제약 속에서, 단순 저축만으로는 자산 축적이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급격히 투자로 옮겨갔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청년층(20~30대) 가구는 금융자산 중 주식ㆍ채권ㆍ펀드 비중이 2019년 20%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주식ㆍ채권ㆍ펀드를 보유한 가구 비중이 약 2배 증가했고, 금융자산에서 금융투자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게 증가했다.
임나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층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더 고수익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으며, 최근 이러한 경향이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한때 ‘단타’와 ‘급등주’에 열광하던 개인투자자들은 점차 ETF, ETF 자문포트폴리오펀드(EMP), 배당 중심의 중장기 전략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특히 20~30대를 중심으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통한 소액 정기투자, 자동 분산 매매 기능을 활용한 장기 포트폴리오 구축이 보편화하고 있다.
지난해 ETF 시장은 순자산 약 174조 원으로 전년 대비 약 44% 증가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올해도 시장 규모는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며 6월 기준 순자산 200조 원을 돌파했다. ETF 상장 종목 수는 2021년(533개) 500개의 벽을 넘은 뒤 2022년 666개, 2023년 812개, 2024년 935개로 증가세를 이어갔다. 6월까지 990개로 1000개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른바 1차 동학개미운동 시기인 2020년보다 순자산 규모는 약 4배, 종목 수는 2배 성장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일반 투자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ETF 상품이 자산운용시장에서 점차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은 투자자 저변 확대 측면에서 크게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짚었다.
국내 상장된 ETF를 통해 간접적으로 해외주식 투자 효과를 노리는 개인투자자도 많았다. ‘TIGER 미국S&P500 ETF’는 이달 국내 상장된 전체 ETF 중 순자산 1위를 차지했다. 국내 ETF 역사상 처음으로 해외주식형 ETF가 순자산 1위에 올랐다. 미국 시장을 추종하는 상품 외에도, 고배당, 우량가치, 리츠, AI·로봇 관련 ETF로도 포트폴리오가 다변화했다.
증권사들이 제공하는 ‘챌린지형 콘텐츠’도 투자자의 성향 변화에 기여했다. 매일 한 주씩 ETF를 사거나, 월 10만 원씩 자동 매수하는 챌린지형 콘텐츠는 투자 진입 장벽을 낮추고 습관 형성을 유도했다. 특히 사회초년생과 MZ세대를 중심으로 자산관리 수단으로서의 ‘장기투자형 ETF’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투자 리터러시의 급속한 개선이 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증권사 리포트, 온라인 강의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기업 분석법, 산업 전망, 경제 흐름을 학습하는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증권사들도 모바일 MTS를 개편하고 신규기능을 업데이트하며 투자자들의 이용 편의성을 지속해서 높이고 있다.
최근 들어 한동안 미국 주식에 몰렸던 자금이 국내로 돌아오는 ‘서학개미의 귀환’ 조짐도 보인다. 고점 논란이 커진 미국 빅테크 주식에 대한 경계심, 달러 약세와 환율 안정이 맞물리며, 국내 대형 기술주로의 관심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개인의 해외주식 순매수 규모는 감소세를 보인다. 대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 대표 기술주에 대한 순매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반도체 업황 반등 기대와 인공지능(AI) 관련 수요 증가로 재평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조준기 SK증권 연구원은 “미국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에 대한 비선호의 근본적 이유는 수익률이 낮다는 것”이라며 “국내 증시의 초과수익이 상당 기간 증명될 경우 자금이 돌아올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