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심 “구청 시정명령 부당”⋯관련 첫 법원 판단 사례

대학병원 장례식장 수익을 병원이 아닌 학교법인 회계로 처리해도 문제가 없다는 법원의 첫 구체적 판단이 나왔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고법 행정2부(김병식 부장판사)는 10일 학교법인 건양교육재단이 대전광역시 서구청장을 상대로 낸 ‘시정명령 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사건의 원고인 건양교육재단은 건양대학교 의과대학 부속으로 대학병원을 두고 있다. 100개 이상의 병상을 갖춘 건양대병원은 부지 내 장례식장을 설치·운영 중이다.
구청은 건양교육재단이 장례식장 관련 수익을 병원이 아닌 법인 회계로 처리해 온 점을 문제 삼았다. 이에 2022년 11월 해당 회계처리 방식이 의료법을 위반했다며 ‘장례식장 수익을 병원 회계로 처리하고 증빙자료를 제출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의료법 제62조 및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 제3조는 ‘병원의 개설자인 법인의 회계와 병원의 회계를 구분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해당 조항의 해석과 적용을 두고 원고와 피고의 의견이 엇갈렸다.
건양교육재단은 소송을 제기하며 ‘장례식장은 의료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수익 등이 병원 회계에 계상돼야 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병원 회계로 올릴 경우 재단의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이 떨어져 학교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구청은 장례식장이 병원 시설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장례식장 관련 수익은 당연히 병원 회계에 계상돼야 한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지난해 10월 1심은 건양교육재단의 손을 들어주며 “법인회계에 계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병원과 장례식장이 각각 의료법과 장사법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둘의 업무 회계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재판부는 “의료법과 장사법 규정을 종합하면 장례식장 설치·운영 업무는 의료업무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며 “장례식장 업무가 행해지는 장소가 의료업을 하는 곳이 아니어서 이를 의료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구청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나아가 장례식장 운영 수익을 병원이나 법인 회계 둘 중 어느 쪽에 계상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는 “장례식장을 학교법인의 수익사업으로 봐 법인 회계에 계상하거나, 의료기관의 부대사업으로서 병원 회계에 포함할 수 있다”며 “어느 경우에 의하더라도 장례식장 운영 수익 및 비용을 처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병원과 법인이 회계를 별도로 경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상당수의 학교법인이 장례식장에 관한 회계를 병원 회계로 처리하고 있다는 사정만으로 원고의 회계처리 방식이 의료기관 회계기준 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달 16일 판결문을 받은 피고 측은 아직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행정 사건의 상고 기간은 판결서가 송달된 날부터 2주 이내로, 오는 30일까지다.
법무법인 정솔의 전인규 변호사는 “장례식장 수익은 병원 회계로 처리하든 학교법인 회계로 처리하든 의료 행위로 인한 수익과는 사실상 엄격히 분리돼 있다”며 “이번 판결은 학교법인이 장례식장 수익을 유용한다는 주장이 타당하지 않고, 구청의 행정조치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