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권이 이재명 정부에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정책 과제는 단연 ‘규제 개혁’이다. 디지털 전환과 산업 융합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전통적인 이자수익 모델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이 어렵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이번 주 본격 가동하는 국정기획위원회에 제출할 ‘금융권 주요 건의사항’ 초안을 마련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조율 중이다. 초안에는 △비금융업 진출 확대 △신탁제도 개선 △투자일임업 전면 허용 △해외진출 규제 완화 △가상자산업 진출 허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총량 규제나 대출 규제 같은 민원성 과제는 이번 건의안에서는 우선순위가 아니다”라며 “금융 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금융의 역할과 범위를 넓히는 구조적 규제 개편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였다”라고 말했다.
금융권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부분은 은행 등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의 폭넓은 허용이다. 단순히 새로운 수익원을 확보하겠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플랫폼 기반의 빅테크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는 인식에서다.
현재 은행의 부수업무는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으나, 일반적인 기술 기업 수준의 완화된 산업 진출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은행의 가상자산업 진출 허용도 이번 건의안에서 주목받는 사안 중 하나다. 은행권은 디지털 자산의 수탁·보관과 같은 인프라 중심 서비스를 통해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금융권은 투명성과 소비자 보호 역량을 갖춘 은행이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권이 규제 개편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거 정권에서도 금융 혁신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규정 중심의 경직된 금융규제 틀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사이 빅테크·핀테크 기업들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빠르게 금융시장에 진입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업계는 “이번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위기감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은행의 경우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면서 ‘이자 장사’ 논란에 직면했고, 실적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여론도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제 완화 요구가 자칫 ‘이익 챙기기’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은행권은 지속 가능한 상생 금융을 위해서라도 제도 개선은 필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은행에 상생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해선 오래가기 어렵다”면서 “상생은 혁신과 함께 갈 때 지속 가능하다. 이를 위한 제도적 토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