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단기보험사 진입 문턱 낮춰
"일본처럼 제도부터 정비해"

대형 보험사가 주도해온 시장에서 틈새를 겨냥한 신생 중소형 보험사들의 '생존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특정 상품에만 집중하는 '단종 보험사'가 속속 등장하며 정체된 보험업계에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반려동물보험에 특화된 소액 단기 전문보험사들이 본격적인 시장 진입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가 출자한 펫보험 전문사 ‘마이브라운’은 지난해 9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소액단기전문보험사 예비허가를 받았고 올해 3월 본허가를 신청했다. 현재는 정보기술(IT)컨설팅 기업으로 등록돼 있지만 반려동물 전자진료기록(EMR)을 활용한 자동심사 시스템을 기반으로 펫보험 전용 보험사로 전환을 준비 중이다.
금융위는 2021년 소액단기전문보험사 제도를 도입해 보험업 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다. 당시 자본금 요건을 기존보다 대폭 낮추고 예비 진입 기업을 대상으로 수요조사와 컨설팅을 실시하는 등 지원도 병행했다. 2022년 11월에는 금융그룹 내에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를 각각 한 곳만 둘 수 있도록 했던 ‘1사 1 라이선스’ 규제를 완화하면서 기존 보험사가 있더라도 펫보험처럼 특화된 분야의 단종보험사 설립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펫보험은 대형 보험사의 부가 상품에 그쳤지만 앞으로는 독립 보험사 형태로 시장 형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보험 스타트업 ‘파우치(Pawchi)’도 최근 6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면서 펫보험 전문 보험사 설립에 나섰다. 파우치의 서윤석 대표는 AIA생명과 메리츠화재에서 12년 동안 보험상품을 개발했고 2018년 메리츠화재 재직 당시 국내 최초의 반려동물보험 ‘펫퍼민트’를 기획·출시했다. 이후 토스에서 보험사업을 총괄하며 디지털 기반 인슈어테크 모델을 실무에서 구현한 경험도 있다. 파우치는 소액단기전문보험사 예비허가 신청을 준비 중이며 펫보험 중심의 독립 법인 설립을 목표로 한다.
한 가지 상품에 특화한 보험사가 늘어나는 배경 중 하나는 일본의 제도적 성공 사례가 있다. 일본은 2006년 소액단기보험업을 제도화한 이후 2023년 기준 115개사가 운영 중이다. 2008년 63개사에 불과했던 소액단기보험사는 약 15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수입보험료는 10년 동안 연평균 9.6%, 보유계약은 8.5%씩 증가하며 시장이 꾸준히 확대됐다. 반려동물보험의 경우 연평균 19.2% 성장률을 기록하며 소액단기보험 시장의 핵심 영역으로 떠올랐다.
일본의 단종 보험사 성장은 제도적 유연성도 한몫했다. 일본은 종합보험사 100분의 1수준인 1000만 엔의 자본금만 있으면 보험사 설립이 가능하고 인허가 방식도 면허제가 아닌 등록제를 채택해 진입 장벽을 크게 낮췄다. 상품 출시도 사전 인가 없이 신고만으로 가능하며 외부감사나 일부 지급여력 규제도 면제돼 소규모 보험사의 부담을 줄였다. 그 결과 다양한 업종에서 보험사가 설립됐고 일부는 손해보험사로 전환되거나 기존 보험사와 합병하며 외형을 확장했다.
국내 펫보험 시장 확대를 위해서는 제도부터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재 펫보험은 높은 보험료와 제한적인 보장 범위, 짧은 재가입 주기 등으로 인해 가입률이 1.7%에 그친다. 진료비 청구의 전산화, 반려동물 질병 코드 표준화, 등록 의무화 등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 보험사들이 안정적인 상품 설계와 손해율 관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펫보험은 단가가 낮고 손해율 변동폭이 커 단기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생활밀착형 보장 확대와 디지털 운영 효율성을 감안하면 충분히 도전할 만한 분야”라며 “플랫폼 기반 설계와 맞춤형 상품 전략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