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해 잡혀도 ‘남는 장사’…범죄수익 환수 사례 거의 없다 [위협받는 기술안보]①

입력 2023-1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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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수익 환수 자체 어렵고 실제 추징 사례 거의 없어”

복잡한 기술에 가치 평가ㆍ판단 엇갈려
‘산업기술’ ‘첨단기술’ 기준 추상적ㆍ모호
피해액 계산법도 달라진 사례 ‘비일비재’

(그래픽 = 손미경 기자 sssmk@)
(그래픽 = 손미경 기자 sssmk@)

부정경쟁방지법과 국가첨단전략사업법 두 개의 혐의를 적용해 기소해도 다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기술’ ‘첨단’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법원은 보수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결국 한 개의 혐의만 겨우 적용돼 선고가 이뤄진다. 일부 혐의만 인정되다 보니 피해액 산정도 계속 바뀐다. 기술의 가치도 계속 변하다 보니 피해액 기준도 달라진다. 범죄수익 환수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유다.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

반도체와 배터리 등 국가 핵심 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범죄가 나날이 증가하지만, 이들이 범죄로 얻은 수익 환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산업 기술을 유출한 자가 교도소에서 징역을 살다 나와도 수익금은 그대로다. 남는 장사인 셈이다.

대검찰청은 10일 기술유출 범죄와 관련해 범죄수익 환수가 이뤄진 통계를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기술유출 범죄 사건을 다뤄본 검사들은 “범죄수익 환수 자체가 어렵고 추징보전까지는 하지만 실제 추징으로 이어진 사례는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검찰 등에 따르면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몰수·추징보전 청구 시 범죄수익액(피해액)은 청구 당시 범죄로 인해 취득한 수익을 원칙으로 산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으로 넘어가면 어려움이 따른다. 여러 피고인이 공범 관계에 있는 경우 실질적으로 귀속된 이익금만을 개별적으로 몰수·추징하는 것이 원칙이다. 또 범죄수익이 특정되지 않는 경우 추징할 수 없다는 것이 기존 판례다.

기술유출 범죄의 내용이 다소 복잡하고 유출된 기술에 대한 가치와 평가, 판단이 엇갈리는 만큼 이와 관련한 범죄수익 환수도 어려운 실정이다.

기술유출 범죄를 수사했던 한 부장검사는 “범죄 수익을 환수하려면 범죄로 얻은 이익이 얼마인지 특정해야 하는데 기술이나 영업비밀은 산정 자체가 어렵다”며 “매년 기술이 바뀌면서 유출된 기술의 가치 산정이 어려운 것도 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  (사진 출처 = 이미지투데이)
▲ (사진 출처 = 이미지투데이)

‘산업기술’ ‘첨단기술’ 등 기준이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피해액 계산법도 달라진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2019년 서울중앙지검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를 받는 안모 씨를 재판에 넘겼다. 안 씨는 자신이 일하던 회사에서 개발한 ‘실시간 습식 식각 장비 제어기술’을 외국으로 유출했다.

1심 재판부는 안 씨의 죄질이 나쁘다고 보고 징역 3년에 1841만 원 추징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달리 봤다. ‘이 기술은 산업기술이 아니다’라는 안 씨 측 변호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안 씨는 기술유출 혐의를 벗었고 벌금형(2000만 원)만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추징은 이뤄지지 않았다.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국기게양대에 검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 국기게양대에 검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연합뉴스)

1심 유죄 판결 496건 중 피해액 적힌 사례 ‘23건 불과’

검찰이 청구하는 범죄수익 환수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또 다른 부장검사는 “검찰이 범죄 피해액을 계산해 법원에 청구해도 법원은 ‘금액이 특정되지 않았다’고 기각한다”며 “범죄 수익을 죄다 환수해야 그나마 범행 동력이 줄어드는데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 비용이 명확한 연구개발비라도 피해금액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원지법은 올해 2월 국내 반도체 세정장비 핵심 기술을 중국에 유출해 710억 원대 이익을 취한 혐의로 A 씨에게 징역 4년을, A 씨가 설립한 반도체 장비제조업체 법인에는 벌금 10억 원을 선고했다.

검찰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세 차례에 걸쳐 535억 원을 추징보전명령을 집행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선고를 내리면서도 별도의 추징을 선고하지 않았다. 이들이 범죄행위로 얻은 재산을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징역을 살고 나와도 막대한 금액을 손에 쥘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이다.

대검 ‘기술유출 범죄 양형기준에 관한 연구’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1월까지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기술유출 사건 496건 중 판결문에 피해액이 적힌 사례는 23건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기술유출로 인한 피해액이 아니라 업무상 배임 등을 산정한 것이었다.

이와 달리 선진국들은 기술유출 범죄를 강하게 처벌하는 추세다. 미국은 국가 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면 영업비밀 절도죄가 아니라 ‘간첩죄’로 가중 처벌한다. 법정 최고형은 징역 20년, 추징금은 최대 500만 달러(약 59억4750만 원)다. 일본도 해외 기술유출에 대한 벌금은 개인 3000만 엔(약 3억3600만 원), 법인 10억 엔(약 112억 원)에 달한다.

홍석현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형사처벌 받는다고 해도 사실 막대한 수익이 남기 때문에 기술을 빼돌리는 건데 추징금이 커지면 당연히 동기는 줄어들 것”이라며 “어디까지 피해로 볼지에 대한 범위와 산정 기준을 명확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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