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 막으려면…"장기근무자 관리ㆍ직무분리 제대로 작동해야" [말뿐인 내부통제]

입력 2023-08-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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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근무자 관리…은행 내규에 구체적 '예외' 요건 없어
'성과ㆍ전문성' 근거로 '예외' 허용하면 사고 반복 가능성↑
은행권 "장기근무 아닌 직무분리 시스템 미흡이 근본 원인"

▲2일 오전 서울 시내 한 BNK경남은행 지점의 모습. (연합뉴스)
▲2일 오전 서울 시내 한 BNK경남은행 지점의 모습. (연합뉴스)

경남은행 횡령사고의 핵심 원인으로는 크게 순환근무제와 직무분리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꼽힌다. 문제는 그간 금융사고가 반복될 때마다 같은 문제점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이번 경남은행 횡령사건을 계기로 장기근무자 인사 관리, 직무 분리를 강화하는 등 '금융사 내부통제 내실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4일 경남은행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경남은행에서 3차례에 걸쳐 562억 원을 횡령ㆍ유용한 사고자가 차장, 과장을 거치고 부장이 되는 과정에서 횡령 규모가 점차 커졌다.

2016년 8월부터 2017년 10월 사고자는 이미 부실화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1건에서 수시 상환된 대출원리금 77억9000만 원을 가족 등 제3자 계좌로 이체해 횡령했고 약 4개월이 지난 2018년 2월에 횡령금액의 37.4%에 달하는 29억1000만 원을 상환처리했다. 하지만 이후 2021년 7월과 지난해 같은 달에 인출 관련 서류를 위·변조해 첫 횡령금의 4배가 넘는 326억 원을 두 차례에 걸쳐 횡령했다. 이어 2022년에는 경남은행이 취급한 PF 대출 상환자금 158억 원을 본인이 담당하던 대출 상환에 유용했다.

경남은행 관계자는 “해당 사고자는 부서장이 된 지 2년 정도가 됐다. 차장, 과장을 거쳐 부서장이 되면 근무 기간이 길어지는 건 맞지만, 전문성이 커지지 않는가”라며 “15년은 이례적인 케이스이지만, 업무가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고 성과 평가결과가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파악돼 장기근무 승인이 계속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동일업무 장기근무자가 횡령을 저지른 건 1년 전 우리금융 횡령사고 당시에도 사고 원인으로 꼽혔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사고자가 동일부서에 2011년 11월부터 2022년 4월까지 10년이 넘게 장기근무하는 동안 8년에 걸쳐 700억 원을 횡령했다는 점을 들어 은행의 내부통제 기능이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3월 말 시중은행의 장기근무자 비율은 11.4% 수준이다. 은행들은 금융당국 지침에 따라 동일 영업점에서 3년 또는 동일 본부부서에서 5년을 초과해 연속 근무한 직원을 ‘장기근무자’로 보고 이 기간이 지나면 부서를 이동시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는 입장이다.

'예외'는 있다. 은행연합회가 올해 초 발표한 ‘인사 관련 내부통제 모범규준’을 보면 기업금융, IT, 리스크 관리 등 ‘높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의 경우, 긴급한 업무 처리 등 장기근무가 불가피하고 채무ㆍ투자 현황 확인 등을 통한 사고위험 통제 가능성이 확인되면 인사 담당 임원은 장기근무를 승인할 수 있게 돼 있다.

은행들은 이 같은 예외에 대한 정확한 기준을 내규에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의무가 아닌 권고 수준으로, 장기근무 승인요건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고 해당 부서에서 꼭 필요한 인원이라고 판단하면 연장하게 되는 것이다.

경남은행 역시 사고자의 ‘근무 실적이 좋다’, ‘전문성이 높다’는 이유로 15년간 한 업무를 담당할 수 있게끔 예외를 허용했다. 경남은행 측은 “(15년간의 동일부서 근무 결정은) 인사 담당자의 의사결정 문제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판단 근거나 인사 횟수 등에 대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예외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잡히지 않으면 제2의 경남은행, 우리은행 횡령 사고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장기 근무 방지 자체가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장기근무자를 줄이는 것은 결과론적인 해법으로, 오히려 전문성을 강화해 은행 경쟁력을 키울 기회를 앗아간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경남은행) 사고를 계기로 인사팀에서 장기근무자 현황 조사에 나섰다”면서도 “준법감시부서 등 리스크 관리, 기업금융투자 부서는 전문성이 필요해 장기근무자를 무작정 줄일 수 없다”고 했다.

횡령 사고 근본 원인은 '직무분리' 시스템 미흡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 주요 내용. (자료=금융감독원)
▲지난해 11월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국내은행 내부통제 혁신방안' 주요 내용. (자료=금융감독원)

철저한 직무분리도 경남은행 횡령과 같은 금융사고를 방지하는 근본 대책으로 꼽힌다. 직무분리란 사고발생 우려가 큰 단일거래에 대해 복수의 인력 또는 부서가 참여하도록 하는 제도다.

금융당국은 우리은행 대규모 횡령 발생 이후 지난해 11월 마련된 내부통제 혁신안에 ‘직무분리 제도’를 주요 개선방안으로 제시하고 △직무분리 대상 명시 △직무분리 관리시스템 구축 △직무분리 운영실태 모니터링 강화 등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당국은 혁신안에서 예컨대 PF 등 IB자금 관리 업무의 경우, 업무 담당자와 통장 관리자, 인감 관리자, 자금결제 담당자를 따로 둬야 한다고 명시했다.

경남은행에서는 이 같은 직무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부장급인 사고자가 자금 인출 요구 심사, 계좌 관리, 지급의 과정을 모두 혼자서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이번 경남은행 횡령 사고를 계기로, 모든 은행에 부동산 PF 자금 관리 실태 전반에 대한 검토를 지시했다. 해당 검토는 계좌를 전수조사해 사업장별 거래 잔액, 세부 거래 내역을 모두 파악하는 방식을 포함할 전망이다.

경남은행 사고 조사와 은행권 점검이 끝나면 당국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내부통제 혁신안을 연내 중 보완해 은행권에 강화된 개선안 이행을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직무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일부 은행의 시스템이 문제인데 은행권 거래 세부 내역 전수 조사 등으로 이미 체계가 잘 갖춰진 은행들의 고삐만 죄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PF 대출 업무 과정에 두 개 이상의 부서가 상호 견제를 하는 구조를 갖췄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PF 부문은 자금 요청 처리 부서, 심사·검토 부서, 실행부서가 따로 나뉘어 있어 업무 과정이 3~4단계로 구분돼 있고 이 과정에서 거치는 업무 담당자는 7~8명 정도다”라고 했다.

한 지방은행 관계자 역시 “PF 부문은 두 개의 부서가 서로 크로스체크하며 업무를 진행하고 있고, PF 계좌에서 1억 원 이상 지급 거래가 일어나면 대주단, 시공사 등 해당 PF 관련인들에게 알림이 가는 상시 감사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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