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단가 연동제 흔들기에 심기 불편해진 중소기업계

입력 2022-10-0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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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비롯한 중소기업 단체장들이 지난 4월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비롯한 중소기업 단체장들이 지난 4월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납품단가 제값받기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가 납품단가 연동제 시행의 부작용을 지적하고 나서면서 중소기업계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14년 간의 공회전 끝에 어렵게 시범사업을 시작한 상황에서 부정적 보고서가 나온 데 대해 중소기업계는 납품단가 연동제 흔들기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29일 논평을 내고 "최근 한 연구기관이 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납품단가 연동제는 의무화하기보다 대·중소기업 간 협상력 격차 완화와 지위 남용행위 규율을 통해 자율적으로 확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며 "중소기업계는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앞서 KDI는 지난 27일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경제학적 논의'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에는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따른 부작용과 경제성 등을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하도급 수·위탁 거래 시 인상분의 일정 비율을 자동으로 납품단가에 반영하는 제도다. 원·수급사업자가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담해 중소기업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관련 제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이었지만 부작용에 대한 지적 등이 이어지면서 14년만인 올해 9월에야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KDI는 단가연동조항을 강제하면 대기업들이 연동 부담을 피하기 위해 계약 기간을 단축하거나 다른 거래 조건을 왜곡해 이익을 보전하려는 시도가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연동조항에 대한 부담을 과도하게 느끼면 원사업자가 기존에 수급사업자에게 주던 일을 직접 하기로 결정하고, 이 경우 수급사업자인 중소기업은 일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공공조달에선 정부가 최종 소비자지만 기업 간 거래에선 원사업자가 소비자에게 비용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고 봤다. 소비자 후생은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연구위원은 "가격에 대한 규제는 시장에 직접적이고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2022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2일차인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복합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4대 정책을 제안했다.  (사진제공=중소기업중앙회 )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이 '2022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2일차인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복합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4대 정책을 제안했다. (사진제공=중소기업중앙회 )

중소기업중앙회 측은 반발했다. 중기중앙회는 "현재 중소기업 간 경쟁은 소위 덤핑경쟁으로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생산을 멈출 수 없어 저가라도 수주받기 위해 제 살 깎아먹기식으로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있다"며 "납품단가 연동제를 빌미로 가격을 후려친다면 이는 제재받아야 한다. 이런 불공정거래행위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제도를 악용하라고 유도하는 것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기업이 직접 생산한다고 원자재 가격 급등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주장은 일감을 볼모로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고스란히 중소기업 홀로 감당하게 하려는 의도"라며 "생산설비를 모두 갖추고, 재고 관리를 하는 등 직접 생산하는 것이 과연 더 효율적일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통해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이익이 났을 때는 공유하고 부담은 나눠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야 중소기업이 기술을 개발하고, 소비자 후생이 개선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조목조목 반박했다. 중기중앙회 측은 "확인되지 않은 제도의 부정적 효과와 논리적 비약으로 제도 도입을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중기중앙회가 공식적으로 반박 논평을 내기에 앞서 김기문 중소기업회장도 불편한 속내를 직접 드러냈다. 김 회장은 지난 28일 중소기업 리더스포럼 중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동제는 거래 질서를 잡겠다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연동하는 질서를 잡는다는 건데 우리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그러면서 "쉽게 말해 대기업이 15% 이익이 남는데 중기는 5% 남으면 잘못됐다는 것이다. 여야가 민생법으로 합의까지 한 내용인데 계속 이런 얘기가 나오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하루이틀 얘기라는 해온 게 아니라 14년동안 이야기 해왔다"고 언짢은 심기를 내비쳤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서울 서초구 KT우면연구센터에서 열린 ‘납품대금 연동제 자율추진 협약식’에서 시범운영 자율추진 협약을 추진하며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벤처기업부)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달 서울 서초구 KT우면연구센터에서 열린 ‘납품대금 연동제 자율추진 협약식’에서 시범운영 자율추진 협약을 추진하며 협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제공=중소벤처기업부)

하지만 납품단가 연동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원사업자 사이에서도 상당하다. 그간 중소기업이 지던 부담을 사실상 이제 원청에 다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반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법제화를 둘러싼 온도차가 극명하다. 대기업들은 시범사업을 상생과 리스크 분담의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법제화는 또 다른 규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국회도 입법화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보이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얼개를 짜는 정도를 넘어 세밀하게 틀을 마련해야 하는데, 연동제 적용 물품과 원재료 범위, 적용 하청 범위 등 민감한 사안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정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자칫 법 시행 이후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정부도 입법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하다. 이영 중기부 장관도 납품단가 연동제의 최종 목표점을 법제화로 보고 있다. 다만 속도에 미묘한 온도차가 있다. 정부가 입법화 이전에 시범사업을 먼저 운영하기로 한 배경엔 '법의 강제성이 주는 부작용을 최소화' 해야 한다는 목표가 깔려 있었다. 시장의 자율성, 상생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려는 의도도 녹아있다. 정부가 시범운영에서 충분한 사례를 모니터링 한 뒤에 법제화에 들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하루아침에 될 거라고 믿지 않는다"며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지 않으면 현장 적용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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