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또 다른 러시아는 등장한다

입력 2022-05-24 05:00
김서영 국제경제부 차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석 달이 흘렀다. 이번 전쟁은 사실상 러시아의 완패에 가깝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점령에 실패한 후 화력을 집중한 동부 전선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우크라이나 투입 전력의 3분의 1을 잃었고, 군 장성 12명이 사망했다. 현대사에 유례없는 불명예다.

전투에서만 체면을 구긴 게 아니다. 경제적으로 러시아의 시계는 냉전 시대로 돌아갔다. 대러 제재 여파로 러시아 사업을 중단한 글로벌 기업만 1000곳이 넘는다.

무엇보다 지정학적 고립이 심화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74년간의 군사적 중립국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선언했다. 동진(東進)을 꾀하던 나토는 손 안 대고 코를 푼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과거 푸틴은 “소련의 붕괴는 20세기에 일어난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말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발트 3국과 동유럽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러시아 경계선이 쪼그라든 데 대한 불만이었다. 푸틴은 나토의 동진을 막고 이 경계선을 물리고 싶어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일환이었다.

러시아는 현재 국제정세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대가를 두고두고 치르게 됐다. 푸틴은 지금이 ‘판’을 흔들어도 될 때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2008년 조지아가 나토 가입을 추진하자 러시아는 구소련 국가들에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 침공했다. 조지아는 나토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까지 병합하자 “나토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한탄이 쏟아졌다. 나토의 무기력은 현상 변경을 꿈꾸는 러시아에 자신감을 심어줬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자신감은 독(毒)이 됐고, 미국 주도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은 비참하게 막을 내리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푸틴의 ‘잘못된 계산’이라고 평가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처음 일어난 침략전쟁은 아시아의 상황을 곱씹게 한다. 중화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 역시 ‘판’을 흔들 시기를 재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길목인 남중국해에 소 혓바닥 모양의 ‘구단선’을 그어 놓고 군사적 토대를 구축해왔다. 대만해협 상공도 휘젓고 다닌다. 존 아퀼리노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한 인공섬 중 최소 3곳을 완전히 군사화했다”며 “지난 20년간 키운 군사력이 2차 대전 이후 최대”라고 밝혔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현상유지’에 틈이 생기고 때가 됐다고 판단하면 현상 변경을 시도할 것이다. 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는 “모든 강대국의 목표는 전 세계 권력 지형에서 자신들의 몫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힘 있는 국가들은 반드시 지역 패권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변화한 지정학적 환경은 새로운 차원의 전략과 전술을 요구한다.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학 교수는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 호주의 미래’에서 호주를 현상유지를 간절히 원하는 국가로 묘사한다. 미국을 수호신 삼아 중국과 더 많은 거래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한다. 전략적 변화 없이는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상유지가 간절한 호주는 가장 활발하게 지역 협력체에 발을 들이고 있다. 미국, 영국과 함께 3국 안보협력체인 ‘오커스’를 창설했고, 미·영으로부터 핵 추진 잠수함 개발 지원을 이끌어냈다.

상대가 변했다. 우리도 변해야만 누군가의 잘못된 계산을 막을 수 있다.

0jung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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