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성적장학금 폐지...염재호 총장의 시도, 대학가 확산될까?

입력 2015-10-1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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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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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가 성적장학금을 폐지하고 가계 곤란 학생들에 초점을 맞춰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침을 정했다. 성적장학금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국내 주요 대학 중 최초로 학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고려대는 14일 염재호 총장의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성적장학금을 단계적으로 축소ㆍ폐지하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장학제도를 발표한다. 총장 선거 당시 장학금 확충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염재호 총장은 성적이 아닌 ‘생활형편을 고려한 장학금 지급’으로 가닥을 잡아 자신의 공약 실현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고려대는 우수한 성적에 대한 대가가 아닌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기초생활수급 학생 등 가계 곤란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지원금 등을 지급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내 장학금심사위원회(가칭)를 신설하며 시행시점은 내년이다. 장학금 지급 기준은 기존처럼 소득분위 산정방식을 참고로 하되 당사자에 대한 입체적인 검토로 장학급을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대가 이처럼 학업 성적이 아닌 가정형편, 생계에 장학금의 초점을 맞춘 것은 저소득층 학생이 어렵게 대학에 입학한 뒤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에 매달리다 학업에 전념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숙명여대 홍성수 법과대학 교수는 “장학금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만 지급하고 성적 우수자는 다른 방식으로 상을 줘야 한다”며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학사경고를 받은 학생이 있다면 이 학생에게 장학금을 줘 다음 학기에 재기하도록 하는 게 진정한 장학”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홍 교수는 “학사경고를 받으면 모든 장학금 수여자격에서 제외되고 빠져나오기 힘든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부유층 학생이 각종 사교육을 통해 대학에 입학하고 이후 공부에 전념해 장학금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반면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은 생계 문제로 되려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고려대 안암캠퍼스는 현재 성적우수장학금을 비롯해 저소득층 장학금, 근로장학금, 교직원 장학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고려대 측은 2014년 기준 2만여명의 재학생을 상대로 성적우수장학금과 저소득층 장학금을 각각 60억원, 126억원 규모로 지급한다. 이는 전체 258억원 규모의 교내 장학금에서 각각 23%, 49%를 차지한다. 이미 교내 장학금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저소득층 장학금에 성적장학금을 단계적으로 투입해 비중을 끌어올려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게 되는 것이다.

대학가에선 이화여대가 고려대보다 먼저 올해부터 입학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적장학금 일부를 축소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대는 총 6개의 성적장학금 중 학점 3.75점을 넘긴 학생들에게 50만원씩 지급하는 장학금을 폐지했다. 대신 ‘EㆍWㆍHㆍA(이화) 장학금’을 신설하고 이중 A장학금은 ‘나눔’에 초점을 맞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지원할 예정이다. 다만 이화장학금은 수시ㆍ정시 등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장학제도가 우수한 학생 유치를 위해 성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고려대가 새롭게 내놓은 장학제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고려대의 이번 장학제도 방안은 학계와 사회에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학업에 대한 의지를 약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저소득충이나 부유층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학생들이 학비 부담 가중으로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반면 국가장학금이 여전히 부족한 만큼 교내에서 이같은 방안을 통해 자체적으로 소득재분배 효과를 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 2012년부터 투입한 소득분위 산정방식의 국가장학금을 통해 학자금 대출액과 건수가 모두 감소세를 보인 반면 같은 기간 저소득층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오히려 증가했다.

소득별 대출 현황을 살펴보면 기초생활 수급자는 2014년 2학기 대출액이 319억 원이었으나 올해 1학기 372억 원으로 53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출 건수도 2만5361건에서 3만217건으로 늘었다. 저소득층 학생들은 국가장학금만으로 학비 충당이 어려워 지급액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소득분위 산정방식을 기준에서 2분위까지는 장학금의 최대 상한선인 480만원까지 지원하지만 등록금의 수준과 주거비를 감안하면 여전히 태부족인 상황이다.

학계 관계자들은 염재호 총장이 주도하는 이번 선택을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서울대가 장학금의 상당 부분을 ‘필요에 의한 지급’으로 점점 바꿔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성적장학금을 축소 혹은 폐지할 때 진통이 예상되는 만큼 대학들이 고려대의 시도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염재호 총장은 최근 강연에서 “성적 우수자에겐 경제적 보상이 아닌 명예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며 “장학금은 이를 필요로 하는 학생에게 먼저 줘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장학금이 경제적 불균형을 해결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뜻을 피력해온 염 총장이 어떤 식의 방안을 내놓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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