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의 통섭]경제의 본립도생(本立道生)

입력 2015-01-0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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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일변도ㆍ진영논리 벗어나 같이 잘 살기 강구해야”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저마다에게 소망을 묻는다면 ‘행복’ 같은 추상적인 단어보다는 먹고 사는 것이 어렵지 않기를 바란다는 구체적인 것이 많을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불황(depreesion)으로 보는 건 지표상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심리로 보면 이미 그렇게 된 지 오래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올해 경제 성장률을 3%대 후반으로 보고 있지만 남 얘기같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부(富)가 늘어나면 그 효과가 아래로 흘러가게 된다는 이른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를 얘기해도 귓등으로 들린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이 전 세계적 관심을 끌었던 건 사이먼 쿠즈네츠의 그 유명한 쿠즈네츠 가설(Kuznets Hypothesis)에 회의만 가득했던 상황에서 그것이 옳지 않다고 용기있게 낙인을 찍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쿠즈네츠 가설이란 경제 개발 초기, 즉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는 단계에서는 소득 불균형의 정도가 크지만 성장이 이뤄진 뒤엔 분배를 통해 불균형 상태가 바로잡혀진다는 것.

▲양극화 문제와 해법을 제시한 토마 피케티.(이코노미스트)
하지만 쿠즈네츠 가설은 이상이었다는게 속속 드러났다. ‘99%’는 못 가졌는데 이를 ‘1%’가 모조리 갖고 있다는 것을 바로잡자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가 벌어진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피케티는 바로 이 소득과 부의 분배를 위해 엄청난 수준의 세금을 물리자는 해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피케티의 솔루션도 이상적으로 보이고, 이렇게 “같이 잘 살아보자”라는 말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어느 곳에서나 오해를 받기 일쑤다. 대기업이나 부자들이 희생하고, 그것을 어려운 사람들이 나누는 것으로 보고 사회주의적인 사고로 몰아가는 편협한 이분법적 사고가 횡행하고 있다. 사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모든 후보들이 공통되게 입에 올렸던 ‘경제민주화’가 바로 그런 것인데 말이다.

그러면서 정부가 내놓는 경제 정책들은 상처의 말단만 치료하는 대증(對症)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진짜 ‘암덩어리’는 불균형과 불평등에 있는데, 규제를 없애면 기업이 알아서 투자하고 일자리 늘려서 우리 경제 선순환의 시발이 될 것이라고 한다.

최근 만난 원로급 경제학자들은 모두 우리 경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정부와 정치권이 잘못 인식하고 있는데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현 경제팀이 이미 틀린 것으로 판명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치는 바로 세우고)가 옳다고 인지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규제를 풀면 대기업이 투자하고 그 과실이 중소기업과 가계까지 이어지리란 가설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정 전 국무총리는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투자는 투자 기회가 있으면 규제가 있어도 한다. 규제를 조금 풀어줬다고 투자를 할 리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자율(금리)을 조금 낮춰준다고 투자나 소비가 촉진될 것이란 생각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며 이자율은 내려갈 수 있을 만큼 다 내려갔다고 본다”며 규제완화, 통화정책의 추가완화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단기적인 효과를 노리는 정치적 목적이 정책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봤다.

동반성장이나 경제민주화 같은 개념들이 내팽개쳐진 보릿자루 신세가 되어버린 것도 이것을 ‘선거용’으로만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는 건 정부가 단기적인 경기 부양이라는 틀에 박힌, 정권 유지를 위한 방어적 기제만 작동시키려 하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동산 가격을 높여 보려는 정책은 결국 매매를 위한 금융규제 완화를 동반, 가계부채를 늘리고 있고, 연구해서 개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빨리 남의 것을 베껴서 개발하려는 식의 연구개발(R&D)이 주가 되면서 첨단 기술 발전은 요원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전 국무총리의 스승 조순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도 같은 의견이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모두 아우른 이례적인 경력의 조 교수는 여전히 매일같이 우리나라의 문제, 자본주의의 모자란 부분을 공부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조 교수는 1960년대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는 경제성장에 대한 신앙적인 숭앙이 문제라고 봤다. 너무 성장에만 매달려 달려오다 보니 내용이 채워지지 않은 채 몸집만 커진 경제가 되었고, 여전히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정책과 진단이 우리나라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

그래서 올해도, 그리고 당분간도 모든 경제 주체들은 이것을 바로잡는 본립도생(本立道生)의 과정에서 인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기업들이 투자하게 하려면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는 주장도 똑같이 반대했다.

정 전 국무총리는 투자는 규제완화에서 비롯되는게 아니라 야성적 충동에 의해 이뤄진다는 케인즈의 말을 가르쳐줬던 사람이 바로 조 교수였다고 회상한다. “미국에서 어렵게 공부하고 돌아온 젊은 조 교수님은 열의가 넘치셨죠. 맨 앞줄에 있는 학생들은 튀는 침을 그대로 맞았어요.”라고 전한다.

두 사람 모두 또 같은 목소리를 내는 사안이 있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을 위해 최우선되어야 할 것은 교육개혁이라는 것. 그리고 진영 논리에 갇혀선 안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왜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는 줄 아십니까?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이렇게 묻습니다. ‘오늘 학교에선 선생님께 무엇을 질문했니’라구요. 그러면 아이가 말하겠죠. 이런 질문을 드렸는데 선생님께선 이런 답을 주셨다고. 그러면 부모는 선생님의 의견과 다르든 같든 자신의 견해를 들려줍니다. 아이는 다층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죠. 그러나 우리 부모들은 어떤가요. ‘너 오늘 학교 시험에서 몇 점 받았니’ ‘몇 등 했니’를 묻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우리 경제 정책에도 반영됐다고 할 수 있죠. 세계 몇 위 경제로 올라서면 무엇합니까. 내실을 기하지 못하는데. 교육 과정에서부터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몸집만 키우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도록 해야 합니다.” 조 교수의 조언이다.

정 교수는 프랑스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의 주장을 인용한다.

“아탈리는 일찌감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을 예상하고 21세기는 이기적인 이타주의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이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라도 남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가진 사람들이 배려하지 않고선 못 가진 사람들로부터 크게 공격받고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들 몰아붙이죠. 그것이 바로 나와 다른 견해는 공격부터 하고 보는 우리 교육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어려울 수록 근본, 원론, 원칙, 그리고 상식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그 어려움이 워낙 현실적이기에 이러한 개념들이 공허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구순에 가까운 조 교수는 아직도 경제 현안을 들여다보며 공부중이다. 곧 탈고할 논문 <자본주의 경제의 지속성장을 위한 경제운영의 원리>에는 아마도 최근의 고민들이 녹아있을 것이다.

▲조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노진환 기자)
조 교수가 아쉬워하는 것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은 총재 자리에 너무 짧게 머물렀다는 것인데, 장기 집권(?)을 못해서가 아니라 우리 경제에 있어 지속가능한 기반을 만들어놓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한은의 독립성을 외쳤던 것도 당시엔 중앙은행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죠. 정부가 하라는대로 할 수밖에 없었고 그걸 고치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어느정도의 자율성이 있지만. 길어야 5년, 정권과 함께 가는 경제정책은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경제학을 ‘도덕 과학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분야(most agreeable branch of moral science)’라 했다. 경제학이 학문에만 갇혀있을 것이 아니라 실천적이어서 우리 생활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케인즈파로 분류되는 조 교수와 정 전 국무총리도 모두 인터뷰 내내 실사구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또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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