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성의 글로벌 인사이트] 국가간 관계와 통상규제: 아베의 트럼프 따라하기?

입력 2019-07-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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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기업활동의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대부분의 산업에서 글로벌 밸류체인(GVC)이 복잡하게 형성되어 있다. 제품 설계와 부품, 소재 및 생산 장비의 공급과 제조, 유통에 이르기까지 단계별 활동이 전 세계에 걸쳐 분산 수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단계의 기업활동에 대한 통상 규제는 최종재 생산을 올스톱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당하는 기업에는 치명적이다. 특히, 규제 대상이 되는 물질이나 소재가 우수한 품질의 최종재 생산에 필수적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1일 3개의 반도체 제조 물질과 소재에 대한 일본의 제재계획 발표와 4일의 전격 시행으로 우리 반도체 산업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황이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고순도(EUV) 불화수소(에칭가스)는 각각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사용하는 감광재 및 물질로 일본이 압도적인 기술우위를 지닌 품목이다. 이들 3개 소재(물질)가 반도체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고품질로 이들을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 최종재의 불량률이 높아져 대체가 어렵다고 한다.

작년 10월 우리 대법원의 징용자 배상판결에 대한 일본의 제3국 중재위원회 개최 요구에 대한 응답 시한이 지난 18일이었고 우리 정부는 대응하지 않겠다고 미리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은 추가 제재조치를 위협하고 있으며, 24일까지 일본 내 의견수렴 후 30일께 내각회의를 열어 우대조치 대상인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8월 22일께부터 우리는 일본이 지정한 수출전략 물자에 대해 건별로 수출허가를 받아야 수입할 수 있게 된다. 반도체 이외에도 수소차 연료탱크, 전기차 배터리 부품, 주요 화학물질 등 주요 필수재 수입에 대해 일본이 언제든지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와 유사한 성격의 조치는 현재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과거 중국도 이를 사용하여 효과를 본 바 있다. 작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은 1962년 도입 이후 거의 사문화된 무역확장법 232조를 원용하여 철강, 알루미늄 수입이 미국의 안보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하며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하였다. 이 조항은 현재까지도 자동차 수입과 중국과의 무역분쟁 등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고 있다.

이번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조치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작년 10월 말 우리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이후 올해 초 일본 초계기에 대한 우리 함정의 레이더 위협 논쟁, 그리고 2015년의 위안부 합의 파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일 간의 관계 악화는 급기야 일본이 수출규제라는 통상조치를 취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일본은 부인하지만).

이번에 일본이 우리에게 취한 수출규제는 2012년 중국에 당한 조치의 되갚음 격이다. 사실이라면 남대문에서 뺨 맞고 동대문에서 화풀이한 셈이 된다. 2012년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점령에 항의하는 중국인 선장의 구속에 대해 중국은 희토류 수출 중단 조치를 취하였고 결국 일본은 항복하였다.

그러나 이번 일본의 조치는 중국보다 교묘하고 계산된 성격을 띠고 있다. 우대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은 지하철 노조의 정시운행 선언과 비슷하다. 즉,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되더라도 무차별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기 쉽도록 계획하여 시행한 조치로 보인다.

현재 일본은 오히려 중국과 손잡고 호의적 경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동북아 질서의 3각 안보동맹의 주요 당사자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뒤틀려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상회담이든 특사든 일본과의 대화채널을 시급히 복원하는 한편, 3각 동맹의 중심축인 미국에 중재를 요청하여 한·일 간의 뒤틀린 관계를 바르게 펼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자동차 산업의 기술자립 과정을 참고하여 장비 및 소재의 국산화와 함께 판매시장뿐만 아니라 구입시장의 다변화를 추진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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