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임형남·노은주 ‘골목 인문학’

입력 2018-10-28 18:23 수정 2018-10-2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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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골목’

삶은 유한하고 우리가 가 볼 수 있는 곳도 제한적이다. 설령 쉽게 가 볼 수 있는 곳에서도 마땅히 봐야 할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의 눈에는 아는 것만큼 보이기 때문이다.

임형남·노은주의 ‘골목 인문학’(인물과사상사)은 인문학이 마치 배경 음악처럼 은은히 흐르는 골목 산책을 다룬 수필집이다. 가온건축을 운영하는 건축가 부부인 두 저자는 일반인들이 좀처럼 주목하기 힘든 국내외 골목길로 여러분을 인도할 것이다. 저자들의 맛깔스러운 문장의 힘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도록 만들 것이며 이따금 깊은 상념에 젖게 할 것이다.

이 책을 손에 들고 읽는 내내 서평자는 마치 여행을 떠난 기분에 젖었다. 그것은 시공간을 넘어서는 여행길이었다. “어린 시절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골목’이다. 골목은 내 유년의 정원이고 들판이며 큰 스케치북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저자의 여행은 그가 나서 자란 서울 입정동 골목길에서 시작된다. 독자 가운데 나이 든 사람들이라면 벌써 그 옛날로 자신이 돌아가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작가는 언어를 만드는 사람이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촉촉한 감동과 여운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옥도 아니고 양옥도 아닌 묘한 집들과 일본 사람들이 떠나며 황급하게 놓아두고 간 적산가옥도 머쓱해하며 골목 구석구석에 박혀 있었다.” 이렇게 그려진 곳은 서울 통의동 골목이다. 각각의 주제마다 골목길의 특징을 잡아낸 저자의 그림 솜씨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책을 한결 유연하게 만든다.

“서교동이란 지명에는 다리 서쪽에 있는 동네라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다리는 지금 없어진 잔다리라는 이름의 다리다. 예전에 경치가 좋았다던 선유도로 갈 때 건너던 다리였는데.” 이런 설명이 서울에 살면서도 무심코 넘겼던 곳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전북 군산 신흥동과 월명동 골목, 전남 목포 온금동 골목, 강원 속초 청호동 골목, 경북 영양 입암면과 영양읍 골목, 부산 초량동 골목처럼 쉽게 눈길을 두기 힘든 곳들이 소개되어 있다. 책 속에 있는 고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들러볼 만한 곳들이다.

우리나라를 두고 좁다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넓다. 저자의 선배 중에 전통건축과 마을을 연구한 원로 건축가가 있었는데, 50년을 답사한 소회를 “우리나라가 징하게 넓더라”라고 털어놓았다 한다.

우리나라 골목들만 다루지 않았다. 중국 저장성 사오싱 골목, 후난성 펑황 고성, 구이저우성 먀오왕성, 일본 도쿄 메지로 골목, 도쿄 아오야마 골목, 교토 니시진, 교토 철학의 길, 교토 이치조치 골목 등이 등장한다. 책 속에는 한국과 일본을 잘 아는 로버트 파우저 교수와의 대화가 나온다. “일본 거리는 너무 깨끗한데 상대적으로 집은 좁고 짐은 많아 어수선한 느낌이고, 한국 거리는 지저분한데 집은 넓고 깨끗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에 대해서는 정확성과 예측 가능함을 장점으로 이야기했고, 한국인에게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낙천성’을 장점으로 꼽았다.”

일본 도쿄 아오야마 골목을 소개하는 글에서는 “길 끝에 이르면 일본을 대표하는 두 건축가를 만나게 된다. 한 명은 안도 다다오이고 또 한 명은 구마 겐고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어 작가가 보는 두 사람의 건축의 특징들을 압축적인 문장으로 소개한다. 때로는 골목길 정경이, 때로는 골목길에서 만난 건축물의 특징이, 때로는 주변 지식들이 적절히 버무려진 책이기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체코 프라하 황금소로 골목과 터키 이스탄불 페네 골목에 대한 글은 정보원으로서도 가치가 있다. 언젠가 그곳을 방문해 보리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책을 덮고 난 다음 곧바로 인터넷 검색으로 그곳을 미리 방문해 볼 수 있다. 글에서 느낀 감상이 실감나게 가슴에 전해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말에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읽기 좋은 책이다. 공병호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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