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카투닝 포 피스, ‘치마가 짧기 때문이라고요?’

입력 2018-10-21 18:35 수정 2018-10-21 18:41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만화로 성차별 고발한 글로벌 페미니즘 보고서

“알겠는데요. 성추행을 당한다는 증거가 있나요?” 경찰서를 찾은 한 여성을 앞에 두고 경찰관은 무관심하게 묻는다. 카툰 작가는 그 여성에게 성추행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치마 속으로 들어온 한 남성을 연상케 하는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려내고 있다. 결코 웃을 수 없는 사진이다.

‘카투닝 포 피스’라는 협회가 쓴 책 ‘치마가 짧기 때문이라고요?’는 전 세계의 일상생활 속에 진행되고 있는 성차별을 만화와 짧은 문장으로 고발한 글로벌 페미니즘 보고서다. ‘카투닝 포 피스’는 전 세계 162개국 작가로 이루어진 국제적인 카투니스트 네트워크로, ‘만평’을 통해서 자유,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힘쓰는 단체다. 이 책은 작가 40명이 참여해 만든 작품으로, 한국적 특수 상황을 더하기 위해 ‘며느리기’ 저자인 작가 수신지도 함께했다.

‘미투 운동’이 요원의 불꽃처럼 번져갈 때, 서평자는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부분을 생각했다. 제도의 민주화는 과할 정도로 이뤄졌지만 여전히 남성 의식의 저변에는 성차별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다. 무모한 인물들의 거친 행동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남성우월주의와 성차별을 담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문제는 제도뿐만 아니라 의식이란 점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언어는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그 언어는 그것에 합당한 행동을 낳는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알게 모르게 벌어지고 있는 성차별에 대한 각성과 함께 개인적으로 여성 차별로부터 자유로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카툰 가운데 한 장은 험한 일을 당한 한 여성이 고루하게 보이는 판사 앞에 섰다. 여성 곁에 있는 남성 경찰관은 법정에서 어처구니없는 증언을 한다. “치마가 너무 짧았습니다.” 곁에 있던 머리가 벗겨진 전문가는 “치마 길이를 재면서 전문가의 보고서에 의해 확인된 사실이죠”라고 외친다. 작가는 “이 그림은 현실 부정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서 법정은 무관심하고, 음흉하게 웃고 있으며, 흥분조차 한 듯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얼마 전에 벌어졌던 국내의 한 사건을 연상케 하는 만평이다.

만평과 간단한 설명이 어우러진 책은 독자들에게 스스로 되돌아보게 한다. 부모가 돼 아들과 딸을 키우는 사람들은 여성 차별에 대해 조금 더 민감하다. 하지만 아들만 키우는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무덤덤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면 우리 스스로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적응이 선택 사항이 될 수도 있지만, 적응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면 그것은 필수가 돼야 한다.

여성에 대한 하대는 오랜 세월 반복적으로 시행됐다. 서양 고전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저서들로 열등한 여성에 관한 내용으로 장식돼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사상가들의 주장은 세련됐지만 그 속에도 남성우월주의를 전달하고 있다. 지난 50여 년 동안 북반구 여성들은 남반구 여성들에 비해 권리 신장에서 큰 성취를 했다. 그런데도 남성들의 권력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놀라운 일은 이따금 역사를 역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주의 국가 한복판에서도 오늘날 무슬림 여성들은 이슬람 제복을 착용하라고 강요받고 있다.

작가 수신지는 ‘며느리기’라는 용어에 대해 이런 설명을 더한다. “사춘기,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되면 겪게 되는 ‘며느리기’라는 시기가 있다. 시댁 식구한테 예쁨받고 칭찬받고 싶은 그런 시기, 보통 1, 2년이면 끝나는데 사람에 따라서 10년 넘게 걸리기도, 안 끝나기도 한다더라.”

그녀는 ‘시(가집)월드’에 입성한 초보 며느리의 끊임없는 잔심부름을 만평에 담았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아들이 안락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며느리는 운반책 역할을 부지런히 행하고 있다. 이것을 개선해야 할 사항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개인으로서 리더로서 여성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는 일은 정의의 실천과 리스크 관리 면에서 중요한 시대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이번에도 싹 쓸어버릴까?…또 천만 노리는 ‘범죄도시4’, 역대 시리즈 정리 [인포그래픽]
  • 올림픽 목표 금메달 10개→7개 →5개…뚝뚝 떨어지는 이유는 [이슈크래커]
  • 살아남아야 한다…최강야구 시즌3, 월요일 야구 부활 [요즘, 이거]
  • 단독 두산그룹, 3년 전 팔았던 알짜회사 ‘모트롤’ 재인수 추진
  • 기후동행카드, 만족하세요? [그래픽뉴스]
  • 단독 저축은행 건전성 '빨간불'에 특급관리 나선 금융당국 [저축銀, 부실 도미노 공포①]
  • 野 소통 열어둔 尹, 이재명 언제 만나나
  • 또 한동훈 저격한 홍준표 “주군에게 대들다 폐세자되었을 뿐”
  • 오늘의 상승종목

  • 04.18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91,242,000
    • -1.89%
    • 이더리움
    • 4,435,000
    • -1.55%
    • 비트코인 캐시
    • 703,500
    • +2.4%
    • 리플
    • 723
    • +0.14%
    • 솔라나
    • 195,500
    • -0.31%
    • 에이다
    • 655
    • -0.76%
    • 이오스
    • 1,072
    • -1.2%
    • 트론
    • 159
    • -4.79%
    • 스텔라루멘
    • 160
    • +0.63%
    • 비트코인에스브이
    • 96,150
    • +0.05%
    • 체인링크
    • 19,420
    • -0.92%
    • 샌드박스
    • 632
    • +0.48%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