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비트폐인’, 방관만 할 것인가

입력 2017-12-12 13:03 수정 2017-12-12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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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국제경제부장

10월 중순에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아내와 세 자녀를 둔 30대 후반의 네덜란드 남성이 비트코인에 투자하기 위해 전 재산을 팔아 치우고 노숙 생활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디디 타이후투라는 이 남성은 당장 필요한 식량과 생필품을 사는 데 쓸 돈만 남기고 70평짜리 집과 자동차 3대, 오토바이까지 전부 팔았다. 그의 친척들은 당연히 그를 광인(狂人)으로 취급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사람들이 현재의 통화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가상화폐가 그런 사람들을 위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비트코인 가격이 5000달러를 넘어 6000달러대를 향하던 시점이었다. 그는 “비트코인이 2020년에는 4배로 뛸 것”이라고 호언했다. 타이후투의 호기가 가상했는지 전 세계에서는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로부터 두 달가량이 지난 지금, 비트코인 가격은 10월 시점보다 4배 이상 뛰었다. 타이후투의 예상보다 2년 정도 앞당겨진 것이다.

이 남성의 이야기를 접한 당시만 해도 비트코인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막연했다. 비트코인이 화폐이든, 투자 대상이든 상관없었다. 그러나 비트코인 가격이 1만 달러를 넘어서고, 자고 깨면 1000달러 단위로 뛰자 현실로 다가왔다. 여기저기서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대박이 났다’는 소문이 들렸다.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선 언제든 비트코인이 화제다. 너도나도 “나도 해볼까”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나온다. 뉴스에선 청소년과 노인까지 용돈벌이로 가상화폐에 투자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학가에서도, 직장에서도 결혼 자금 마련이나 내 집 마련을 위해 가상화폐에 기웃거린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더 이상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닌 것이 돼 버렸다.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에 비해 피해가 덜했다고 한다. 금융위기는 미국 금융기관들이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에게까지 주택담보 대출을 남발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 그 모기지론의 돈 받을 권리를 증권으로 만들어 투자은행에 되팔고, 이 파생된 금융상품들이 파생에 파생을 거듭, 해당 상품에 투자했던 개인과 기관들이 줄줄이 엮이면서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번졌다. 월가의 탐욕과 금융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이 부른 비극이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금융산업 발달이 더뎌, 다시 말하면 신(新)문물 도입에 보수적이어서 극적인 피해를 비켜 갈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세계를 강타하는 가상화폐 열풍은 다르다. 우리나라가 그 폭풍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는 금융권에서 터졌지만, 가상화폐 광풍은 IT 산업에서 비롯됐다. 어느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IT 강국으로서 위상이 여전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문제는 제도적인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거래 규모는 일본, 미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전 세계 거래량의 80%를 차지하는 일본은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였던 마운트곡스 파산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오히려 가상화폐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가상화폐 보급은 물론 제도적인 안전장치까지 정부가 맡는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은 민간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도 감독 기관이 모니터링하며 제도적으로 보완해 나가고 있다. 무조건 ‘규제’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올해 6월 기준 국내 1일 총거래액은 약 1조 원에 달했다는 통계가 있다. 6개월이 지난 지금은 그 규모가 2배 이상 커졌을 가능성이 크다. “사기다” “거품이다”라는 비관론이 현실화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 몫이다. 이 중에는 쌈짓돈을 모두 쏟아부은 청소년과 노인, 월급과 생활비를 던진 가장과 주부도 포함된다. 단순히 물질적인 피해뿐 아니라 사회문제로까지 번질 여지가 다분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타이후투의 이야기에는 반전이 있다. 그가 돈방석에 올라앉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그의 재산은 이미 두 배로 불어났지만, 비트코인을 현금화하지 않고 여전히 노숙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2020년이면 비트코인 가격이 10만 달러로 뛸 것”이라고 장담한다. 비트코인 광풍이 거세지자 베팅 규모도 더 대범해진 것이다.

대표적인 가상화폐 비관론자인 워런 버핏은 그랬다. “누가 알몸으로 수영하고 있었는지는 썰물이 되면 비로소 알 수 있다”고. 알몸이 드러난 이들을 감싸주는 건 결국 누구 몫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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