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한은의 자화자찬과 독립성

입력 2017-07-06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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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현 자본금융 전문기자

“전문성이 부족한 의사결정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정보우위를 가진 외부 전문가의 전략적인 설득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집단적 의사결정자가 편향성을 가진 외부 전문가의 조언에 영향을 받을 개연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높은 의사결정체가 구성돼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위원회는 모범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지난달 27일 한국은행(BOK) 경제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이 자신이 분석한 BOK경제연구 보고서를 발표하던 자리에서 한 말이다. 보고서 주제는 ‘전문가의 전략적 정보 전달(Cheap Talk)이 의사결정자의 의견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것으로, 다소 생소하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선택 내지 결정의 문제를 다뤘다는 점에서 기자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다만 BOK보고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정한 유의수준(有意水準)하에 어느 정도의 설명력을 갖는다는 분석 숫자 하나 없는 다소 이례적인 보고서였다. 상당한 수준을 가진 전문가나 알아볼 수 있는 복잡한 수식 하나가 보고서 결론 배경의 전부였다.

설명회에 함께한 또 다른 한은 관계자는 이를 두고 “이론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을 뿐이다. 문제는 그 어떤 추가 근거도 없이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를 모범사례로 들었다는 점이다.

한은이 내놓는 BOK경제연구 등 일부 보고서들은 집필자의 개인의견이라는 게 한은의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그간 한은 보고서의 주제와 발표 시기는 꽤나 정치적이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은 내부의 결재 절차를 통해 비로소 외부에 공표할지, 발표 시기는 언제로 할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결국 한은은 이 보고서를 통해 금통위가 독립적이었으며, 그간 무척 잘해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들의 말처럼 한은 금통위원들은 자타공인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우선 전문성만 강조한 나머지 의사결정 결과가 현실과는 차이를 보인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과거 일각에서는 “금통위원들이 한은의 길 건너에 있는 남대문시장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느냐”는 비판을 하기도 했고, 금통위 구성원을 늘리자는 주장을 하면서 ‘가정주부 몫을 두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또 이명박(MB)·박근혜 정부 들어 금통위는 정권의 말 한마디에 정부 정책의 거수기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가 많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명박 정부가 앉힌 김중수 전 한은 총재는 총재 취임 전부터 “한은도 정부”라고 언급했고,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정통 한은맨 출신 이주열 현 총재도 지난해 “나도 이 정부(박근혜 정부) 사람”이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전문가 집단으로서 외부의 주장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앞선 보고서의 평가와는 달리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계속해 온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듯 문재인 대통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박승 전 한은 총재는 지난달 12일 한은 창립 67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 “새 정부는 중앙은행 독립성을 최대한 존중해 주리라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쯤 해서 또 한 장면을 소개하면 지난달 22일 한은이 금융안정 관련 금통위 후 금융안정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에서이다. 한은은 136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급증 문제의 원인으로 저금리 기조 지속과 부동산 규제 완화를 꼽으면서도 단기는 물론 중·장기적인 대응 방향으로 저금리 기조 해소를 끝내 내놓지 않았다. 이를 따져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한은 부총재보는 “통화정책 방향을 언급할 수는 없다”고 비켜 갔다. 가계부채 급등 원인을 제공한 한 주체임을 감안한다면 ‘유체이탈 화법’으로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한은 독립성은 정부와 정책공조를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자기책임하에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전문성을 가진 인물들로 한은과 금통위가 꾸려진 만큼 충분히 할 수 있는 과제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자화자찬과 책임회피보단 자아성찰이 우선이다. 정권교체로 갑자기 다시 ‘툭 주어진’ 한은의 독립성이지만, 그래야만 오래오래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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