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숭호의 키워드] 데자뷔, 자메뷔, ‘내로남불’-어제 본 걸 오늘은 왜 안 보인다 하나

입력 2017-06-14 10:58 수정 2019-03-1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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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밝은 것이 있으면 어두운 것이 있다. 옳은 것이 있으면 그른 것이 있다. 기시감(旣視感)이 있으면 미시감(未視感)이 있다.

기시감은 처음 보는 것을 이미 본 것처럼 느끼는 것이고, 미시감은 이미 본 것을 처음 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기억상실증과 같은 병증이 원인이다.

기시감은 프랑스어인 ‘데자뷔(deja vu)’를 번역한 말이다. 미시감도 ‘자메뷔(jamais vu)’라는 프랑스어를 번역한 말이다. ‘deja’는 ‘이미’, ‘jamais’는 ‘결코 ~~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vu’는 ‘보았다’라는 뜻을 지녔다.

데자뷔는 20세기 초 프랑스 심리학자들이 사용하기 시작, 한 세기가 지나면서 일반명사처럼 됐다. 국내에도 일상의 대화에 섞어 쓰는 사람들이 많다. 자메뷔는 데자뷔만큼 일반화되지는 않았지만 검색해보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데자뷔의 개념은 소설 등 문학에 많이 차용됐으며, 영화 소재로도 많이 활용됐다. 2007년 미국에서 찍은 ‘데자뷔’의 주연은 잘생기고 지적인 흑인 배우 덴젤 워싱턴이 맡았다. 자메뷔를 소재로 만든 영화로는 웃기는 모습이 슬픔을 자아낼 때가 많은 아담 샌들러가 미국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는 드루 배리모어와 함께 찍은 2004년 작 ‘첫 키스만 50번째’가 있다.

덴젤이 형사 역으로 나와 진지한 연기를 펼친 ‘데자뷔’는 줄거리가 복잡해 여기 옮기기 어렵지만, ‘첫 키스만 50번째’는 아담이 드루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지고 드루 역시 아담을 사랑하나 기억상실증이어서 하룻밤만 지나면 어제의 기억을 다 잊어버려 아담을 매일 처음 본 사람처럼 대한다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데자뷰’가 일반인들의 본격적으로 일반인의 입에 오르내릴 무렵이었을 2014년에는 오은이라는 시인(당시 32세)이 시 ‘미시감’으로 제 15회 박인환문학상을 받았다. ‘여기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단 한 번도 여기에 속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라는 구절이 미시감의 ‘현(絃)’을 살짝 건드린다. 지난해 8월에는 강원도 속초에서 ‘미시감’이 공연됐는데 ‘국악 납량 콘서트’라는 설명으로 홍보됐다. 호남 어디엔가는 ‘미시감’이라는 카페도 있다고 한다.

▲‘첫 키스만 50번째’ 포스터. 13년 만에 곧 재개봉된다.
▲‘첫 키스만 50번째’ 포스터. 13년 만에 곧 재개봉된다.

기시감, 데자뷔는 최근에는 인사청문회 기사에 ‘내로남불’과 함께 부쩍 자주 나타나고 있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격 낮은 말이다. 지금 여권이 과거 야당일 때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논문표절, 병역비리 등을 이유로 당시의 여권, 즉 지금 야권의 인사 청문회에 어깃장을 놓더니 정권을 잡은 후엔 자신들이 그 짓을 고스란히 반복하는 것을 보고 언론들이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시감은 한국 정치에서 ‘내로남불’과 잘 어울리는 어휘일 수 있겠다.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에서 ‘내로남불’과 제일 잘 어울리는 단어는 미시감이다. 여권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르고 봐왔던 것을 저지르지도 보지도 않은 것처럼 딱 잡아떼고, 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든 관철하려 하고 있으니 이게 미시감이 아니고 무엇인가. 야권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미시감에 빠져 그런 적 없었던 척 인사를 밀어붙이고 정책이란 이름으로 여기저기 사방에 대못을 박아대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니 미시감을 처음 사용한 프랑스 학자들은 ‘미시감은 몽환상태에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구나. 이 사람들은 언제까지 ‘우리만 옳다’는 몽환상태에서 국정을 논하고 살필까? 어찌하여 국민들에게는 기시감인 것이 그들에게는 항상 미시감으로 나타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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