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

입력 2017-02-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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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새하 정책사회부 기자

1995년 10월 3일. 미국 프로 미식축구 선수였던 OJ 심슨은 증거 부족으로 살인 혐의를 벗었다. 선수로 활동하며 미국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심슨은 전 부인과 그의 내연남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에 출두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도주하던 심슨은 100㎞가 넘는 추격전 끝에 붙잡혔다. 미국 전역의 시민들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TV 앞에서 지켜봤다.

관심은 이어졌다. 심슨의 재판은 실시간으로 방송됐다. 사람들은 피 묻은 장갑을 직접 끼어 보는 심슨과 비싼 돈을 준 변호인단이 제값을 톡톡히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검찰 측이 혐의를 입증하고, 변호인들이 이를 반박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시민과 법원이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시민의 입장에서 법원은 ‘미지의 세계’다. 잘 모르면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 마련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전관예우’라는 말도 법원의 시스템을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일 수도 있다. 이에 법조계에선 국민에게 재판 절차와 법원을 알리겠다며 이런저런 행사를 열기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법원 행사에는 로스쿨 지원생이나 스펙을 쌓으려는 대학생들만 넘쳐난다.

그런데도 법원은 국민에게 다가가기 쉬운 방법 중의 하나인 재판중계를 꺼린다. ‘비선 실세’ 최순실 씨 관련 사건 생중계를 고려한다는 말도 나왔으나, 쏙 들어갔다.

헌법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공개재판주의’다. 실제로 피해자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하는 성범죄 사건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재판을 방청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은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증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등 여러 원칙을 내세우며 1·2심 생중계를 하지 않는다.

속내는 뭘까.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재판이 대중에게 공개되면 그만큼 스스로 엄격하게 법과 절차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햇빛은 최고의 살균제다.” 투명성을 강조한 루이스 브랜다이스 전 미국 연방대법관의 말을 기억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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