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독서산책] 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

입력 2016-05-3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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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수술 외과의가 전하는 삶의 감동

살다보면 많은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작은 불편함에 대해 툴툴거리게 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생명의 불꽃이 호롱불처럼 위태위태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을 구하기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존경받는 영국의 신경외과 의사이자 문필가인 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더퀘스트)는 살아 있는 것 자체에 대한 숙연함과 경외감을 안겨주는 책이다.

저자는 뇌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외과의사이면서 섬세한 필체로 감동을 전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뇌를 수술한다는 것을 상상해볼 수 있는가. 독자들은 작가와 함께 뇌수술의 위험천만한 세계로 여행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언젠가 심장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이처럼 중압감으로 가득 찬 생활을 평화롭게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라는 놀라움이 함께했던 기억이 있는데, 헨리 마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결혼생활이 25년 만에 파탄이 난 것을 두고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신경외과 수술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장시간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대단한 인물인 양 행세하다가 결국 25년 뒤에 결혼생활이 끝장나고 말았다.” 이어 독백처럼 흘러나오는 한마디는 “한국의 아내라면 참아낼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것이다. 뇌수술의 어려움을 표현한 “경험이 늘어날수록 운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는 문장이 가슴을 파고든다.

뇌수술을 담당하는 의사로서 환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25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에는 목숨을 건진 사람, 세상을 떠난 사람, 그리고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와 더불어 저자의 독특한 시각과 감정, 그리고 판단과 고뇌 등이 담겨 있다.

뇌는 일종의 혈관 덩어리이기 때문에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사소한 실수가 환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이런 수술을 매일 행하는 의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베테랑 수술 전문가임에도 그 또한 이따금 과거의 실수가 남긴 심리적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가 위험천만한 수술 중에 이따금 만나는 감정이 이를 말해 준다. “과거에 동맥류 수술을 하다 일으킨 사고들이 유령의 행진처럼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여러 해 전에 잊어버린 환자들의 얼굴과 이름, 환자의 가련한 친척들까지 갑자기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수술을 하는 중에도 이 수준에서 그냥 멈춰버릴까라는 생각도 든다고 한다. “여기서 수술을 끝내버릴까? 괜히 더 건드렸다가 출혈을 일으켜 망치면 어쩌지? 두려움에서 도망치려는 충동과 내 이성이 미친 듯이 싸움을 벌인다.”

이따금 우리는 뇌출혈을 경험하는 친인척이나 상사를 보곤 한다. 우리가 얼마나 뇌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이 책은 분명하게 알려준다. 동맥류는 뇌동맥이 풍선처럼 작게 부풀어 튀어나온 것이기 때문에 치명적인 출혈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폭이라고 해야 고작 2~3mm밖에 되지 않는 동맥류는 벽이 무척 얇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동안 저자는 혈관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검붉은 피를 생생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행하는 수술을 이렇게 묘사한다. “신경외과 의사들은 동맥류 수술을 폭탄 처리 작업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목숨을 걸고 하는 폭탄 제거와 달리 환자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내가 옆에서 지켜본 신경외과 수술은 위험천만한 종양을 추적하는 사냥에 가까웠다.” 신경외과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고 뇌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고 이렇게 살아 있음에 깊이 감사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만 아니라, 삶에서 우연히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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