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극과 희극 사이

입력 2015-11-2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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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영길 사회경제부 기자

“피고인에게 실형을 선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징역 10월을 구형합니다.”

지난 17일 검찰은 조성진 LG전자 사장에 대한 결심 공판에서 이같이 밝혔다. 법조기자로 일하면서 손괴죄 구형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언뜻 들으면 중죄를 저지른 것 같지만, 말 그대로 물건을 망가뜨렸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웬만해서는 돈을 물어주고 말 문제다. 조 사장의 혐의는 ‘경쟁사인 삼성전자 제품을 깎아내리기 위해 세탁기를 일부러 파손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 사건에는 많은 인력이 투입됐다. 재판장은 20여년간 판사생활을 한 엘리트 법조인이었고, 공소를 유지한 검사는 물론 대기업의 명예가 걸린 싸움에 나선 대형로펌 변호사도 능력이 검증된 ‘선수들’이다. 세탁기를 부순 죄로 장기간 검찰 조사와 재판을 받은 조 전 사장 역시 '40년 세탁기 외길 인생'을 내세우는 장인이다. 독일 현지에서 과연 세탁기가 망가졌는지를 검증하기 위해 5명의 증인이 우리나라를 찾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화려한 프레젠테이션과 진지한 증인신문이 이어졌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일부러 그랬지’라는 추궁에 ‘내가 왜’라는 반박이 반복됐다. 이해관계가 걸린 양 당사자들은 사뭇 진지했지만,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면 촌극에 가까웠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아무 것도 얻을 게 없는 이 재판에 최고급 인력이 낭비되고 있었다.

많은 법조인들이 민사의 형사화를 우려한다. 돈을 못 받으면 사기로 고소하고, 지분다툼을 벌이려면 횡령이나 배임으로 엮는다. 본래 형사 소송은 개인의 감정을 풀기 위해 사용해서는 안되는 절차지만, 세계적인 대기업인 LG와 삼성은 기어이 ‘모범’을 보였다.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사건은 대법원까지 갈 확률이 높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 찰리 채플린이 남긴 이 말은 11월의 형사 법정에 어울릴 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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