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대통령, ‘방콕’ 말고 휴가를

입력 2015-07-29 10:39 수정 2015-07-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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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호 경제국장

한국인이 해외 패키지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상은 절대 행복감이 아니다. 그건 바로 ‘인내의 한계’다.

우선 오갈 때 타는 비행기부터 그렇다. 넉넉잖은 월급을 쪼개고 쪼개 가려다 보니 여행객 대부분은 최대한 싼 해외 패키지를 택한다. 당연히 항공기는 밤에 출발해 새벽에 도착하는 밤샘 비행기고 당장 현지에 내려 강행군해야 하는 처지니 눈이라도 조금 붙여둬야 한다. 그러나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 앉아 있느라 그러지 않아도 온몸 마디마디가 분리되는 느낌인데 여기에 잠까지 잔다는 건 초고도 인내심이 있어도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화장실 간다고 자리 비켜달라고 하는 사람부터 앉아 있는 고역을 못 견디고 아예 복도에서 서성거리는 사람까지 온통 잠자기에 거슬리는 것뿐이다. 더 얄미운 건 어떤 악조건에서도 능히 잠잘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이 있어 코까지 드르릉거리며 세상 모르고 자는 족속들이다. 밀폐된 공간에서 코 고는 소리는 마치 동굴 속처럼 에코를 일으켜 다른 승객의 머리를 딩딩 울리게 하면서 잠을 원천봉쇄한다. 나아가 이 소리는 그냥 소리에 그치지 않고 못 자는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다른 사람들은 저리도 잘 자는데 나는 왜 못 자나 하는 소외감과 열등감을 한껏 자극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심리적으로도 잠은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죽을 둥 살 둥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여행객들은 이제 꿈에 그렸던 에메랄드 빛이 숭고한 그 사원, 하늘까지 우뚝 솟은 그 불가사의한 성당, 색이 수십 가지여서 도대체 현실 같지 않은 그 황홀한 해변에서 실컷 놀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여행객들은 관광지에 들를 때마다 깃발 든 가이드로부터 “여기는 20분”, “여기는 10분”이라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관광시간에 대한 얘기를 들어야 한다. 당연히 이 시간 안에 둘러보려면 100m 육상선수처럼, 아니 치타처럼 달려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관광지에선 무한 재촉하더니 쇼핑하는 곳에선 무려 1시간을 준다. 살 만한 것도 없는데 마치 인질처럼 1시간을 잡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열 받은 건 쇼핑 시간이 하루에 두세 번은 있다는 것이다. 3박4일이면 최대 12시간을 쇼핑하는 데 허비하는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즐기는 휴가는 해외 패키지와는 100% 다르다. 밤샘 비행기, 10분 여행, 쇼핑 강요 같은 역경을 능히 견뎌내지 않아도 된다. 인내심의 극한을 실험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행복함의 극한을 실험하는 휴가다.

물론 국내 휴가도 여행지가 붐비고, 휴가지까지 차가 밀리긴 한다. 하지만 해외로 갈 때 하곤 비교가 아예 불가능하다.

요즘 시골마을 가운데 농어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많은데 이 중에서 집에서 되도록 가까운 곳을 골라 가면 유명 휴가지같이 붐비지도 않고 도착하는 시간도 엄청나게 절약된다. 특히 농어촌 체험 프로그램은 밤에 평상에 둘러앉아 스르륵 풀벌레 소리 들으며 삼겹살 구워 먹고 옥수수 삶아 먹는 최고의 경험을 선사한다. 물론 손에 흙 잔뜩 묻히며 농사일하는 맛도 있다.

해외 패키지와 국내 여행을 비교해 보면 답은 뻔하다. 고통만 잔뜩 안겨주는 해외 패키지가 아니라 행복을 잔뜩 선사하는 국내 휴가를 선택해야 한다.

독자들이 국내 휴가를 가야 하는 건 이런 실리적 측면 이외에 당위론적 이유도 있다. 28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달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무려 41%나 감소했다. 다행히 이달 들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평시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이 때문에 해변에서 튜브에 파라솔 빌려주는 아저씨도, 산 정상에서 아이스박스 들고 아이스크림 파는 아줌마도, 해변 옆 횟집 주인아저씨도, 산 아래서 산채 파는 할머니도 죄다 얼굴에 깊디깊은 주름이 잔뜩 패었다. 하지만 이분들 걱정을 한 번에 날릴 수 있다. 우리가 그분들 앞에 훅 나타나기만 하면 걱정 끝, 주름 해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휴가도 작년처럼 청와대에서 ‘방콕’하고 있다. 대통령과 수행원이 휴가지에서 쓰는 돈이야 조족지혈이겠지만 대통령이 국내에서 휴가를 보낸다는 사실 자체가 한국 관광산업에는 엄청난 도움이 된다. 대통령의 휴가지가 온 세상 사람들한테 알려지면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이다. 물론 국가정보원 민간인 사찰 논란 등 이런저런 복잡한 일이 얽혀 있어 훌쩍 휴가 떠나는 게 저어되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죽어가는 한국 관광에 후끈 활력을 불어넣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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