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국회법 개정 유감

입력 2015-06-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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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국회법 개정안이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국회의장의 중재로 위헌 시비가 있는 부분의 단어 하나를 고쳤다. ‘요구’를 ‘요청’으로 바꾸었으니 딱 한 자 바뀐 셈이다.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나름 열심히 노력한 모양이다. 그래도 그렇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명색이 국회인데, 좀 더 제대로 된 절차로 좀 고민다운 고민을 할 수는 없었을까? 아쉽다 못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취지야 좋다. 국회가 만든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어긋나는 대통령령과 부령 등을 만드는 행정입법 행위를 손보겠다는 것이다. 행정부의 오래되고도 잘못된 ‘버릇’ 중 하나이다. 누가 뭐라 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방법이다. 국회가 가진 여러 가지 권한이나 힘을 활용해 바로잡겠다는 것이 아니라, 행정입법 그 자체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법을 고쳤다. 즉 소관 상임위원회가 행정부의 중앙행정기관장에게 잘못된 부분을 고치라고 ‘요구’하면, 그 기관장은 이를 ‘처리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원회에 보고하게 했다.

단박에 위헌 논의가 일었다. 문제의 핵심은 개정입법의 강제성 유무, 즉 국회가 행정입법의 수정을 강제하는 내용이냐에 있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강제하는 것이라 보고 있으며, 그러한 맥락에서 이를 위헌이라 하고 있다. 행정입법권은 헌법에 따라 행정부에 위임된 권한으로, 이 위임된 권한에 국회가 다시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청와대 또한 같은 입장에서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고 있다.

다급해진 국회가 이미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자구수정’했다. ‘요구’를 ‘요청’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고는 말했다. “이로써 강제성 시비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정말 그런가? 천만의 말씀이다. 강제성 있는 법률을 만들고자 한 쪽은 야당이다. 이 야당은 자구수정 후에도 강제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자구수정으로 변한 게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뭔가? 국회가 행정부와 국민을 상대로 말장난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래도 되나?

야당이 입장을 바꿨다면, 그래서 자구수정으로 개정 법률의 의미가 정말 달라진 것이라면 더 큰 문제이다. 사안 자체가 자구수정 사안이 아닌 번안사안, 즉 법안의 내용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번안사안은 당연히 국회의 의결을 다시 거쳐야 한다. 그것도 일반 법률안보다 높은 의결 정족수, 즉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을 요한다. 국회의장과 여야 대표가 자구수정한 것이 위법에 탈법이 된다는 말이다.

한심한 문제는 또 있다.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이 잘못됐을 경우 이에 대해 수정을 요청하는 주체를 국회 자체가 아닌 소관 상임위원회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국회법은 행정입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 소관 상임위원회가 그 잘못을 통보하고, 그 처리계획과 결과를 보고받게 되어 있다. ‘통보’에 ‘권고’ 내지는 ‘독려’인데, 그런 것이야 누구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소관 상임위원회가 그렇게 하도록 한 부분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다르다. 강제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 내용이 현행법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강하다. ‘처리하고’라고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어보자. 소관 상임위원회가 국회를 대신해 이렇게 강한 권한을 행사해도 좋은가?

안 될 말이다. 국회는 국회이고, 상임위원회는 상임위원회이다. 국회가 그 권한을 위임한 것이라 하겠지만, 이 역시 포괄위임을 제한하는 국가운영 원칙에 맞지 않는다. 또 대리인 문제, 즉 위임받은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 자기 이익을 먼저 챙기는 문제 등이 수없이 발생할 수 있다.

단적으로 상임위원회는 늘 기업이나 이익집단 등 특수한 이익에 노출되어 있다. 국회의원 다수를 잡기는 어렵지만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 몇 명은 쉽게 ‘포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와 같이 정당이 나름의 정책 방향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늘 보고 또 봐 온 일이 아니던가? 뭘 믿고 그러한 권한을 맡긴다는 말인가?

국회와 행정부, 어느 한쪽 편을 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 거부권을 행사하라 말라 하고 싶지도 않다. 국가 기구라면 최소한의 논리와 고민다운 고민이라도 있어야 했지 않느냐는 마음에 몇 자 적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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