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기자 딱지떼기⑨] 새로운 시작, 나에게 하는 다짐

입력 2015-04-20 13:33 수정 2015-04-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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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 메신저로 공지가 났다는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제목은 ‘인사명령-수습직원 정직원 전환’. 이투데이 공채 8기 수습기자 유지만, 정경진, 정다운, 오예린이 수습기자 꼬리표를 뗀다는 내용이다. 입사한 후 6개월간 인턴과 수습을 거쳤으니, 이제 이투데이의 정식 가족이 됐다는 ‘통지’를 받은 것이다.

인사명령이 난 다음날, 일과를 마친 저녁 8시에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선배들의 축하와는 별개로 우리들만의 파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모이고 보니, 모두들 지시받은 취재 아이템을 처리하느라 노트북을 꺼내기 바빴다. ‘수습’이라는 딱지만 뗐을 뿐 우리는 여전히 서툴렀고, 허덕이기 바빴다.

한 숨 돌린 후 지난 수습 시절을 돌아보면서, 각자의 기억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키워드’를 꼽아보기로 했다. 전(前) 수습기자 넷의 기억은 제각각이면서도 결코 다르지 않았다. 바로 새 출발에 대한 기대감과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다.

▲지난해 인턴 생활을 할 때 과제로 주어졌던 기획기사를 쓰기 위해 회의실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결과물은 훌륭하지 않았지만, 다들 열심히 뛰어다녔다.

◇유지만(산업부) ‘망망대해”= “머리 깎아 주세요.” 1월의 어느 날, 일주일 전에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을 했음에도 난 또 미용실에 들렀다. 취재 때문이다.

이때 나는 부실시공 논란이 있었던 한 대형 쇼핑몰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데스크와 담당 선배는 “찾아내지 못하면 회사로 돌아오지 말라”는 일종의 격려(?)까지 하며 나를 현장으로 보냈다. 마치 망망대해로 나가는 어부의 심경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현장에서 사방을 누비며 취재했지만, 마땅히 건진 것은 없었다.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려 해도 하나같이 나를 피했다. 입이 바짝 말라갔다. 정신마저 혼미해지는 듯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미용실을 떠올렸다. 미용실은 동네 정보의 ‘저수지’라 불리지 않던가. 난생 처음으로 머리에 7만원짜리 영양제까지 발라가며 종업원들과 얘기했다. 하지만 허탈함과 텅 빈 지갑, ‘최신 유행’이라는 가위질의 흔적만 남았다. 패잔병마냥 회사에 복귀한 내 등 뒤에 데스크의 한마디가 날아들었다. “저 놈, 머리는 어디서 한거야? 아이큐(IQ)가 50은 떨어져 보이네.”

이날의 기억이 특별하게 남은 이유는,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포기하는 순간이 게임이 끝나는 순간’이라는 만화 속 대사처럼, 늘 현장에서 숨쉬며 항상 노력하는 기자로 남고 싶다.

▲올해 1월 인턴에서 수습기자로 전환된 후 이투데이 기자회에서 마련한 환영식 자리. 이날 본의 아니게 자리를 함께하신 편집국장은 수습기자들에게 카드를 뺏겼다.

◇정다운(자본시장부) ‘노트북’= 눈을 뜨자마자 감기 직전까지 그를 바라보고 만진다. 한 눈이라도 팔다 놓칠세라 항상 안고 다닌다. 그가 지치지 않게 항상 에너지원을 준비하는 내조는 필수다.

‘아! 그가 애인이었으면 좋으련만….’, 애석하게도 사람이 아니므니다.

그는 제2의 심장이자 두뇌인 나의 노트북이다. 기자가 되기 전에도 노트북과 스마트폰은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 존재의 의미, 아니 급이 조금 달라졌달까?

대부분의 기자에게 노트북이란 군인의 총이요, 어부의 그물이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얼굴에 쓰고 있던 안경은 없어졌는데 손에 들고 다니던 노트북은 온전했던 경험이 말해준다. 지난 1월 오래된 내 노트북님이 급작스럽게 운명하셨을 때 사양과 가격을 재고 따질 시간도 없이 매장에서 노트북을 들고 나왔던 일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소중한 그 분이 이따금씩 파란화면을 띄우며 ‘영업중지’를 선언하면 정말 곤란하다. 특히 마감이 코 앞인 시간이라면 등에 식은땀마저 흐른다.

지금 나의 노트북에는 지난 10월부터 오늘까지 매일 쓴 기사와 검색한 정보, 나만의 검색 툴들이 모두 저장돼 있다. 1년 후에는, 10년 후에는 어떤 것들로 채워질까. 혹시라도 잃어버렸을 때 눈물이 주룩 흐를 만큼 아까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백업은 필수!

▲올해 2월에 했던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수습기자 교육 과정 중 소방체험에 참여했을 때의 모습. 난생 처음 입는 방화복에 조금은 아이처럼 들떴었다. 마스크까지 쓴 터라 누가 누구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아 타 매체 기자들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정경진(금융시장부) ‘택시’= 6개월 간 기자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외친 말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0.01초의 고민도 없이 당장 “택시요!”를 외칠 것이다.

택시는 노트북에 버금가는 필수요소(?)다. 아침에 눈뜨고 6시가 넘은 시계를 봤을 때에도 “택시!”(출근이 6시 반까지다). 선배의 지시에 따라 순간 이동을 해야 할 때에도 “택시~!” 밤 늦은 시간까지 회식을 한 후에도 “태~액시~~!”를 외친다.

인턴기자 시절 과천청사를 출입하던 선배를 하루 종일 따라다닌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선배는 “택시비가 한 달에 수십만원”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면허가 없는 탓에 뚜벅이 생활 말고는 해 본적이 없어서 선배의 이야기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속으로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나면 되지 않을까?’란 의문도 품었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한 것 자체가 부끄럽게, 월급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택시는 나의 단짝으로 자리 매김한 지 오래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지만 요금을 계산할 때마다 생각한다.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날걸….’

하지만 택시라고 해도 능사는 아니다. 도로가 막히면 총알택시도 속수무책이다. 미터기에 올라가는 요금을 보면서 속만 태울 뿐이다.

지난 2월 여의도에서 강남으로 30분 만에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순간적으로 지하철을 타야 할 것인지 아니면 택시를 타야할 것인지 엄청난 내적 갈등을 했고 결론은 ‘택시’였다. 재빠르게 택시를 잡았지만 정체된 도로에 발이 묶여버려 오전 11시 시작 예정인 세미나에 30분이나 지각했다. 돈과 시간을 둘 다 잃어버린 경험이라 이 당시 바짝 마르던 입술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택시를 부르는 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분초를 다투는 일상 속에서 노트북 가방을 매고 달리면서 부른다. “택시~!”

▲수습기자를 뗀 다음날인 금요일, 업무를 마친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치킨집에 모였다. 하지만 모두 남은 일들이 있어 치킨을 앞에 둔 채 노트북을 펼쳤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유지만, 정다운, 오예린, 정경진 기자 순.

◇오예린(문화부) ‘전화기’= “카톡” “지이이잉~” 2014년 11월 7일에서 8일로 넘어가는 새벽 노홍철의 음주운전, 16일 이른 오전 고 김자옥의 갑작스런 별세 소식. 두 사건 모두 주말 이른 새벽에 터진 연예계 사건 사고소식이다.

모든 부서가 마찬가지겠지만 문화부는 연예인들의 사건 사고에 따라 밤낮 구분없이 ‘카톡’과 ‘전화벨’이 울린다. 당시 나는 기자란 늘 연락이 되어야 한다는 본분을 망각한 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선배들의 카톡 메시지가 수십개 오는 동안에도, 휴대폰이 ‘지이이잉~’ 진동소리를 내며 내며 옆에서 춤을 추고 있어도 코를 골며 달콤한 잠을 즐기고 있었다.

결국 잠에 빠져 2주 연속 사건을 제시간에 챙기지 못한 못한 나는 그 이후로 ‘전화만 하면 자고 있는 아이’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카톡’ 소리 하나에도 벌떡 일어나는 민첩함을 지니게 됐다. 전화는 진동이 3번 울리기 전에 무조건 받는다. ‘지이이잉~’ 진동이 울리면 이제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입으로 가져가 “네 국장”, “네 선배”를 외친다.

수습기자 딱지는 뗐지만, 이제 기자라는 딱지가 새롭게 붙었다. 아직도 내가 기자라고 불릴 만한 자격이 있는지 몰라 어렵게 얻은 이 직함이 사실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이 부담감은 영원히 가지고 일하고 싶다. 딱지를 뗐을 때보다 붙였을 때의 그 설렘과 긴장감, 마음가짐을 간직하며 10년, 20년이 지나도 늘 노력하는 기자가 되고 싶기에.

‘수습기자 딱지떼기’를 진행해 오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포털사이트 메인에 기사가 아닌 우리들의 글이 실리는 쾌거(?)를 이뤘으며, 처음 보는 출입처 관계자의 “잘봤습니다”란 말에 당황하기도 했다. 누구는 몇 년간 연락이 없었던 친구와 다시 상봉(?)하기도 했단다. 여전히 힘들고 배고픈 ‘막내의 길’을 걷겠지만, 가슴에 오랜 시간 남을 추억 하나가 생긴 느낌이다.

수습 꼬리표를 뗐을 뿐, 변한 것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막내고, 선배와 약삭빠른 취재원과 연이은 사건·사고에 탈탈 털릴 것이며, 늘 긴장한 채 눈치를 살피게 될 것이다. 6개월 간 선배 어깨 너머로 배워 왔지만, 앞으로 채워야 할 것이 더 많다. 오히려 ‘수습’이라는 방패 하나가 사라진 것 같아 어깨가 무거워진다. 꼬리표만 뗐을 뿐, 아직 내 몸하나 수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밤 10시. 6시 반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5시간 남짓. 김 빠진 맥주를 들고 건배를 한다. “좀 이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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