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통항량 2000만→400만 배럴로
亞, 중동 의존도 낮추고 대체 공급망 확보

미국이 해상 봉쇄와 고강도 경제 제재를 앞세워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가운데 이란의 핵심 협상 카드였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력이 약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해 세계 경제에 충격을 주는 한편,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려 했으나 에너지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대안을 찾았기 때문이다.
6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이란 내부 관계자와 중동 지역 소식통 등을 인용해 “미국의 해상 봉쇄와 강화된 경제 제재가 이란의 원유 수출과 외화 확보를 제한하면서 이란 경제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6개월이 지난 가운데 미국은 군사력으로 달성하지 못했던 목표를 경제적 압박을 통해 달성 중인 셈이다.
로이터통신은 “미국과 중동 국가 당국자들은 경제적 압박이 누적되면 이란이 결국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선박 통행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덧붙였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쟁 이전 전 세계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했던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 요충지다. 다만 개전 6개월 만인 9월 1일 기준으로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에너지는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개전 이전에 하루 2000만 배럴이 이곳을 통과했던 반면, 9월 1일 기준으로 하루 통과량은 400만 배럴까지 감소했다. 특히 LNG의 경우 전쟁 이전 호르무즈 통과 비중이 20% 수준이었던 반면, 6개월 만에 1% 미만만 이곳을 통해 수출길에 오르고 있다. 중동 원유 의존도가 높았던 아시아 주요국을 중심으로 호르무즈 봉쇄 이후 빠르게 대안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이밖에 다른 국가도 대체 공급원을 확보하는 등 에너지 시장이 변화한 환경에 적응했다.
이란 전문가 아라시 아지지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힘의 균형이 이란에 불리하게 기울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봉쇄하지 못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지렛대가 약화하고 있는 한편, 미국의 해상 봉쇄가 이란에 실질적인 타격을 더 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란은 애초 호르무즈 해협의 물류 차질이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일으켜 미국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나리오는 현실화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른 국가들이 공급 차질에 적응하면서 이란이 중동을 넘어 세계 경제에 가할 수 있는 압박에도 한계가 드러났다고 분석한다.
다만 미국의 압박이 실제 이란의 양보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이란은 아직 미국에 굴복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제재 완화와 해외 동결자산에 대한 접근권 회복, 호르무즈 해협에서 자국의 안보 역할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압박은 이란 내부에서는 갈수록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란 고위 관계자 3명은 미국의 압박을 견디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을 통해 인정했다. 강화된 제재와 해상 봉쇄로 외화 확보가 어려워진 데다 상품 수입과 국제 금융망 접근도 제한되고 있는 탓이다. 무엇보다 연료와 밀을 비롯한 주요 수입품 부족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물가 급등과 무역 위축, 가계소득 감소까지 겹치면서 이란 지도부는 경제난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다시 촉발할 가능성도 경계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역시 해상 봉쇄와 경제제재를 결합한 미국의 전략을 ‘원투 펀치’라고 표현하며 대이란 제재의 효과를 강조했다.
결국, 미국과 이스라엘, 일부 중동 국가는 대이란 경제적 압박이 심화하면 이란 내부에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지도부의 균열까지 촉발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다만 경제적ㆍ군사적 압박만으로 이란 지도부를 굴복시키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란 정권이 수십 년에 걸친 경제제재와 국내 반정부 시위를 견뎌왔고 강경 진압을 통해 체제를 유지해온 만큼 이번에도 미국의 예상보다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중동협상가를 지낸 데니스 로스는 이란의 경제난을 미국의 전략적 승리로 단순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경제적 고통을 감수하면서 미국보다 오래 버티는 것이 양보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계속 과시하면서도 전면적인 확전은 피하는 방식으로 군사력 사용의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로스 협상가는 “이란은 회복력 측면에서 지속해서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었다”며 경제적·군사적 압박만으로 이란의 후퇴를 끌어내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전망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부르주 외즈첼리크 선임연구원도 로이터통신을 통해 “경제난이 반정부 시위 위험을 높이고 있지만 전쟁 상황이라는 특수성이 이란 정권에 일정 부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외국의 군사개입과 민간인 피해,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와 충돌하고 있다는 인식이 이란 사회에서 애국주의를 자극하면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정권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지 또는 인내를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결국, 미국과 이란의 대치는 어느 쪽이 먼저 경제적·정치적 한계에 도달하느냐를 둘러싼 장기전으로 흐르고 있다. 미국의 경제봉쇄는 이란 경제에 갈수록 큰 타격을 주고 있지만 이란 혁명수비대는 오히려 경제적 고통을 견디는 것 자체를 협상력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로이터통신은 “협상의 돌파구로는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항 문제가 거론된다. 이란이 일률적인 통행료 부과를 포기하는 대신, 항행 안전이나 보안 등을 위한 합법적인 비용을 받을 권리를 인정받는 절충안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