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법률-상속] 재산 넘겨줬더니 부모 외면…증여, 취소할 수 있을까?

입력 2026-08-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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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잘 모시겠다”는 자녀 말을 믿고 재산을 미리 넘겨줬는데, 정작 재산을 받은 뒤 부모를 외면한다면 어떻게 될까. 부모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면 재산을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증여한 재산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까.

최근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결정을 내렸다. 이미 이행된 증여는 자녀가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원칙적으로 되돌릴 수 없도록 한 민법 제558조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건 청구인은 2008년 자녀에게 토지를 증여하고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쳤다. 이후 자녀와 관계가 악화되자 2023년 증여계약을 해제하고 토지를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증여가 서면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자녀가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재산상태도 현저하게 변경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민법은 이러한 사정을 일정 부분 고려하고 있다. 서면에 의하지 않은 증여는 해제할 수 있고, 수증자가 증여자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도 증여자는 증여를 해제할 수 있다. 증여자의 재산상태가 현저하게 변경돼 생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미 증여가 끝난 경우다. 민법 제558조는 이러한 해제 사유가 있더라도 이미 이행한 부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부동산을 증여하고 소유권이전등기까지 마쳤다면 이후 법에서 정한 해제 사유가 생기더라도 원칙적으로 그 부동산을 되찾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헌재는 이 같은 규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미 완료된 증여까지 사후적으로 번복할 수 있게 한다면 증여자와 수증자 사이의 법률관계가 지나치게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흥미로운 점은 ‘부양의무 불이행’에 관한 판단이다. 이 부분에서는 재판관들의 의견이 5대4로 팽팽하게 갈렸다. 다수의견은 자녀가 부모에 대한 부양의무를 저버리는 행위가 비난받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다만 부모가 별도로 부양료를 청구할 수 있고, 애초에 부양을 조건으로 하는 부담부증여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미 끝난 증여의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4명의 재판관은 자녀가 법률상 부양의무를 저버렸는데도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을 그대로 보유하도록 하는 것은 일반적인 법감정과 가족 간 상호부조의 가치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의 반대의견을 냈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는 다수의견보다 소수의견에 조금 더 공감한다. 물론 한번 완료된 증여를 쉽게 번복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부모와 자녀 사이가 나빠졌다거나 부모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수년 전 증여까지 되돌릴 수 있다면 재산관계의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

그러나 ‘부양의무 불이행’은 단순한 가족 간 감정싸움과는 다르다. 부모가 자신의 노후를 자녀에게 의지할 것이라는 신뢰 아래 상당한 재산을 넘겼는데, 자녀가 재산을 받은 뒤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부모에 대한 부양까지 외면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러한 경우에도 단지 증여가 이미 이행됐다는 이유만으로 수증자의 재산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과연 실질적인 정의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부양의무 위반에 증여 취소를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증여의 경위와 재산 규모, 부모의 경제상태, 자녀가 부양의무를 위반한 정도 등을 고려해 신뢰관계가 중대하게 훼손된 예외적인 경우에는 이미 이행된 증여라도 반환을 인정할 수 있도록 입법적 보완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결정은 생전 증여를 고민하는 부모들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노후의 부양을 기대하며 자녀에게 재산을 넘긴다면 “우리 자식이 설마”라는 믿음만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부양을 전제로 증여하는 것이라면 계약 단계부터 부양의 내용과 범위, 불이행했을 때의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정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가족 간 증여에는 재산만 오가는 것이 아니다. 그 밑바탕에는 신뢰와 책임도 함께 존재한다. 이미 끝난 증여의 법적 안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헌재의 판단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다만 재산을 받은 뒤 그 신뢰를 저버리고 부모에 대한 최소한의 부양의무마저 외면한 경우까지 “한번 줬으면 끝”이어야 하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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