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이해 돕는 ‘쉬운 판결문’ AI로 확산 나선 법원 [판결문이 쉬워졌다 ①]

입력 2026-08-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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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위한 ‘쉬운 판결문’ 확대 나선 법원
서울행정법원, AI 활용 시연회…법관 작성 부담 낮춰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강우찬 수석부장판사)가 작성한 이지리드 판결문 일부 (판결문 제공=서울행정법원)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강우찬 수석부장판사)가 작성한 이지리드 판결문 일부 (판결문 제공=서울행정법원)

사법부가 지적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가 판결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된 ‘이지리드(Easy-Read·이해하기 쉬운)’ 판결문을 선보인 가운데, 생성형 AI를 활용해 판사의 작성 부담을 줄이는 등 이지리드 판결문 확산에 나서고 있다.

11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생성형 AI를 활용해 이지리드 판결문 초안을 작성한 뒤 판사가 수정·보완하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 강우찬 수석부장판사가 맡은 지적장애인 A 씨의 장애정도 미해당 결정처분 취소 소송의 이지리드 판결문에도 생성형 AI ‘클로드(Claude)’가 보조 수단으로 쓰였다. 일반 판결문이 재판 결과를 “피고가 원고에 대하여 한 장애정도 미해당 결정 처분을 취소한다”고 표현했다면, 이지리드 판결문은 “재판을 낸 원고 A 씨가 이겼습니다. 법원은 구청의 결정을 취소합니다”라고 풀어썼다.

판단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도 다르다. 기존 판결문에서는 지능지수와 전문의 진단 등을 법리와 함께 장문의 문장으로 설명한다. 반면 이지리드 판결문은 “법원은 구청의 결정이 틀렸다고 판단합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라고 먼저 결론을 제시한 뒤, 의사들의 진단과 A 씨의 생활 상황, 판사가 직접 확인한 내용 등을 하나씩 나눠 설명했다.

법원에서는 비실명화한 판결문이나 사건의 결론·핵심 판단 이유를 AI에 입력해 이지리드 판결문에 맞는 표현과 문장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AI를 활용한 이지리드 판결문 작성 방식은 점차 확산하는 모양새다. 강 부장판사는 최근 장애법연구회 홈페이지에 클로드를 이용한 이지리드 판결문 작성 방법을 공유했다. 서울행정법원도 지난달 소속 법관들을 대상으로 AI 활용 시연회를 열어 작성 과정을 소개했다. 시연회에는 판사 약 35명이 참석해 직접 활용 방법을 익혔다.

이지리드 판결문은 장애인과 고령자, 문해력이 낮은 사람 등 정보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재판 결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한 문서다. 장애인 등 소송 당사자의 신청이 있거나 재판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작성된다. 작성 방식은 별도의 승인 절차 없이 재판부가 결정하고, 합의부 사건에서는 판사 3명이 내용과 표현을 함께 검토해 완성한다.

▲사법정책연구원 '장애인 등을 위한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서 작성방안' 일부
▲사법정책연구원 '장애인 등을 위한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서 작성방안' 일부

이 같은 변화는 올해 시행된 대법원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사법지원 예규’에 따른 것이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RPD)는 2014년 장애인권리협약 제1차 국가보고서 심의에서 대법원이 2013년 발간한 ‘장애인 사법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고 효과적으로 이행할 것을 권고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권고 취지를 반영해 이번 예규를 마련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예규 제정을 위한 연구에도 장애가 있는 판사와 변호사 각 1명, 장애인단체 활동가 등이 직접 참여했다.

다만 판사들의 업무 부담이 크고 이지리드 판결문 작성이 의무 사항도 아니라는 점은 현실적인 제약으로 꼽힌다. 법원이 AI 활용에 주목하는 이유도 업무 부담 때문에 작성을 망설였던 법관들의 진입 장벽을 낮출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핵심과 결론만 간단히 풀어쓰고 AI로 이미지를 만들면 크게 품이 들진 않을 것 같다”며 “아직 활용 사례가 많지 않은 만큼 더 많은 재판부에서 시도해 사례를 축적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내 첫 이지리드 판결문은 2022년 작성됐지만, 현재까지 확인된 사례는 6건에 그친다. 이 가운데 4건은 강 부장판사가 작성했고, ‘장애인 등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서 작성방안’을 집필한 권형관 울산지법 부장판사와 유환우 서울남부지법 부장판사가 각각 1건씩 작성했다.

법원행정처는 올해 예규 시행에 이어 이지리드 판결문 확대를 위한 지원방안 마련과 관련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소송절차 안내서에 사법지원 제도에 대한 안내와 사법지원 신청서를 첨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각급 법원에서 사법지원 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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