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너머] 베일 벗은 ESG 공시, 이제 기업이 답할 차례

입력 2026-07-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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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서 ‘양치기 소년’ 소리는 안 듣게 돼서 다행입니다”

한 상장사 ESG 담당자는 최근 발표된 '지속가능성(ESG) 공시 제도화 방안' 최종안을 이렇게 평가했다. 공시 대상이 늘고 법정공시로 전환되면서 소송 리스크 등 새로운 부담은 남았지만, 적어도 언제·누가·어떤 방식으로 공시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걷혔다는 얘기다.

금융위원회는 2028년(2027회계연도)부터 연결자산총액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사업보고서를 통한 법정공시를 시행하기로 했다. 2029년에는 대상을 5조원 이상으로 넓힌다. 2월 공개한 초안보다 첫 적용 대상은 넓어졌고 거래소 공시가 아닌 법정공시로 곧바로 들어가게 됐다.

당국이 ESG 공시 의무화를 처음 공식화한 건 2021년이다. 당초 2025년 시행을 목표로 했지만 국제 ESG 공시 기준 확정이 늦어지며 2026년 이후로 한 차례 미뤄졌고, 올해 들어서도 의견수렴과 국회 일정 등에 발이 묶이며 최종안 발표가 세 차례나 밀렸다. 시행이 번번이 미뤄지며 현장에서 '양치기 소년'이라는 말까지 나온 이유다. 공시 의무화 일정을 근거로 내부에 자료를 요청하고 보고를 반복해온 ESG 담당자들까지 함께 그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번 최종안의 의미는 완벽한 제도를 만들었다는 데 있지 않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들은 더 빠르고 폭넓은 공시를 요구했고 경제계는 비용과 법적 책임 부담을 이유로 속도 조절을 주장해왔다.

스코프3 공시 3년 유예와 포괄 면책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선 상황에서도 초안보다 후퇴하지 않은 로드맵을 내놓았다는 점은 평가할 대목이다. 미국이 기후공시 규칙 폐지를 추진하고 EU도 공시 부담을 낮추는 흐름 속에서 한국이 오히려 제도화를 택한 점도 눈에 띈다.

이제 공은 기업으로 넘어갔다. 그동안 기업 현장에서는 시행 시점·대상·방식이 정해지지 않은 점을 준비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아왔다. 이제 그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 스코프3 공시도 유예될 뿐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제조업 비중이 큰 국내 대기업들은 협력사 배출량 데이터까지 확보해야 하는 만큼 남은 시간도 길지 않다. 제도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준비를 미룰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정부가 불확실성을 걷어냈다면, 이제 기업은 준비로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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