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른들, 왜 이렇게 됐을까? [이슈크래커]

입력 2026-07-1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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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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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연봉 좀 올려주세요."

한 기업 인사담당자 앞에 나타난 건 신입사원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신입사원 연봉 협상 자리에 부모가 동행했다는 이야기, 처음 들으면 "설마 그럴 리가" 싶으실 텐데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인사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낯설지 않은 사례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대학생 자녀의 성적에 이의를 제기하려 부모가 교수에게 직접 연락하고, 퇴사 의사를 자녀 대신 통보하고, 심지어 면접 일정 문의 전화를 부모가 거는 일까지 있다고 하죠.


(사진=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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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 구인구직 플랫폼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의 32.5%가 "채용 과정이나 입사 지원 시 지원자 부모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연락 유형도 면접 일정 문의(48.2%), 합격 여부 이의 제기(35.7%), 연봉 협상(12.4%) 순으로 다양했습니다.

과거의 육아 기준이 "몸만 다치지 않으면 된다"였다면, 지금은 "마음에 상처 하나 나서도 안 된다"로 바뀐 셈이죠.

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부모는 왜 회사까지 따라왔을까

(사진=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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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례가 화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환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헬리콥터 부모'죠. 자녀 머리 위를 헬리콥터처럼 맴돌며 사사건건 개입하는 부모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개념은 한국보다 먼저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연구돼 온 현상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의 개입 방식도 점점 진화(?)했습니다. 아이가 마주칠 장애물을 미리 다 치워버리는 '스노우플로우(제설차) 부모', 아이 앞길에 놓인 문제를 통째로 제거해버리는 '잔디깎기 부모', 컬링 선수가 스톤이 지나갈 길을 닦아주듯 아이의 길을 매끈하게 다듬어주는 '컬링 부모'까지. 신조어가 계속 늘어난다는 건 이게 결코 한두 명의 유별난 사례가 아니라는 뜻이겠죠.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이 모든 변화가 처음부터 "아이를 나약하게 만들자"는 의도로 시작된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죠.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는 아동 트라우마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학교마다 상담사가 배치되고, 정신 건강의 중요성이 사회 전반에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마음을 지켜주자"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한 흐름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아이를 진짜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것을 넘어, 작은 실패나 갈등, 심지어 일상적인 스트레스까지 원천 차단하려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겁니다.

35년 전 미국 학교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습니다. 학교에서 아이 둘이 다투면 교사는 직접 개입해 말리는 대신 "끝까지 싸울래, 아니면 지금 악수하고 끝낼래?"라고 물으며 아이 스스로 책임지고 선택하게 했습니다. 운동회에서 넘어져 메달을 놓친 아이에게도 "인생은 원래 불공평해. 스포츠도 마찬가지야. 그걸 받아들여야 진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라고 가르쳤습니다.


(디자인=정지윤 기자 @chxmas)
(디자인=정지윤 기자 @chxmas)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는 한 졸업식 축사에서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다. 그 사실에 익숙해져라"라며 "학교는 승자와 패자를 가리지 않으려 할지 모르지만, 사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는 낙제 제도를 없애고 정답을 맞힐 때까지 기회를 줄지 몰라도, 진짜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역시 2019년 오바마 재단 서밋 인터뷰에서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배제하고 차단하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대학이나 학교는 여러분을 모든 불편함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진짜 세상으로 나가 싸우고 설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다소 냉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아이에게 나름의 맷집과 회복력을 길러줬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을 지나며 미국 학교와 가정에서도 '트라우마 예방'과 '심리 상담 보고서'가 남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보호 문화는 이제 국경을 넘어 한국 사회에서 강도 높게 자리 잡은 상태입니다.


작은 실패가 아이를 단단하게 만든다

▲유리잔과 플라스틱 컵. (사진=AI 생성)
▲유리잔과 플라스틱 컵. (사진=AI 생성)


아이를 상처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적당히 상처받게 두는 것, 둘 중 무엇이 진짜 아이를 위한 길일까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뉴욕 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인 조너선 하이트는 저서 '불안 세대'에서 이 질문에 흥미로운 답을 내놓습니다. 핵심은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는 개념인데요, 이는 원래 미국의 경제학자 나심 탈레브가 제시한 개념입니다.

그는 아이들이 본래 '반취약성(Antifragility)'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갈등을 겪고 넘어지는 과정에서 오히려 강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이 위험과 갈등을 원천 차단하면서, 아이들은 오히려 극도로 불안해하고 자립력을 잃어버렸다고 분석합니다.


프래질(Fragile)
ㆍ특징: 충격을 받으면 깨지고 다시 복구되지 않는다.
ㆍ예시: 유리잔

리질리언트(Resilient)
ㆍ특징: 충격을 받아도 원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ㆍ예시:플라스틱 컵

안티프래질(Antifragile)
ㆍ특징: 충격을 받을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ㆍ예시: 대장간에서 만든 칼


(사진=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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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근육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지금 견딜 수 있는 무게보다 살짝 더 무거운 무게를 들면 근섬유는 미세하게 파열됩니다. 아프고 상처가 나는 과정이죠. 하지만 그 상처가 아물면서 근육은 이전보다 더 강해집니다. 마음도 마찬가지라는 게 이 이론의 핵심입니다. 10kg의 스트레스를 견디는 아이에게 12kg짜리 가벼운 어려움을 주고, 스스로 극복하도록 놔두는 것. 그게 진짜 성장을 만든다는 거죠.

실제 소아청소년 심리학계 연구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스트레스 백신 효과'를 강조합니다. 성장기에 스스로 통제하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미세 스트레스'를 겪어본 아이들은, 온실 속에서 자란 아이들에 비해 성인이 되었을 때 불안장애나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최대 45%나 낮았습니다.


한국은 왜 유독 더 심해졌을까

(사진=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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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시작된 과보호 흐름이 한국에서 한층 더 강하게 나타나는 데는 나름의 인구학적ㆍ문화적 배경이 있습니다.

가장 큰 요인은 급격한 인구 구조 변화입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한국은 1980년대만 해도 가구당 평균 자녀 수가 2.8명에 달했지만, 현재는 세계 최저 수준인 0.7명대의 초저출산 시대입니다. 특히 서울의 경우 초등학생 가구 중 외동 비율이 50%를 넘어섰습니다. 자녀가 단 한 명 뿐이다 보니 부모의 시간적ㆍ경제적ㆍ감정적 자원이 오직 한 곳에만 집중되는 '올인(All-in) 육아'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죠.

여기에 사교육 경쟁과 입시 중심 문화가 결합합니다. 202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초기 성인기의 부모-자녀 관계와 사회 계층적 차이' 보고서에 따르면, 학부모의 66.9%가 '자녀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부모의 책임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를 두고 보고서는 "부모의 양육과 지원이 개인의 성공과 실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부모들이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처럼 아이의 성취가 곧 부모의 책임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자녀 한 명에게 쏟아붓는 자원이 많아질수록 그 아이가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더 어려워지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과보호의 그늘이 학교와 직장으로

(사진=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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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보호의 영향은 가정을 넘어 학교와 직장 등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학교 현장입니다. 경쟁보다 정서적 안정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승패를 최소화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는 순위를 명확히 가리지 않거나 참가자 모두에게 상을 주는 방식이 확산됐습니다. 또 예전처럼 전교생 앞에서 공개적으로 상장을 수여하기보다 학생들의 심리적 부담을 고려해 교무실에서 조용히 전달하는 학교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실패와 경쟁을 최대한 줄이는 환경에서 성장한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대학 분위기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생(20~24세) 가운데 시험 낙제나 조별 과제 갈등 등 일상적인 좌절을 겪은 직후 "극심한 무기력감이나 불안으로 일상생활이 일시적으로 어려워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최근 5년 사이 1.8배 증가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기업 현장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조기 퇴사로 이어지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조기 퇴사율은 27.7%에 달했습니다. 퇴사 사유로는 '직무가 적성에 맞지 않아서'가 가장 많았지만, '상사 및 동료와의 인간관계'(23.4%) 역시 상위권을 차지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좌절이나 갈등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채 사회에 진입할 경우 조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을 모두 '과보호의 결과'로만 해석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치열한 입시 경쟁과 불안정한 고용시장, 높은 집값과 자산 격차 속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심리적 어려움이 커진 이유를 개인의 취약성이나 부모의 양육 방식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한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참고 넘겼던 불안과 우울, 스트레스를 이제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도움을 요청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관련 통계가 증가한 측면도 있다는 분석입니다. 결국 '헬리콥터 부모'나 '스노우플로우 부모' 현상은 분명 하나의 사회적 변화이지만, 오늘날 청년 세대가 겪는 어려움을 설명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어른이란

(사진=AI 생성)
(사진=AI 생성)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진짜 어른이 되었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두 가지를 꼽습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자율성', 그리고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효능감'입니다.

이전 세대는 이런 능력을 어떻게 길렀을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일상에서 크고 작은 갈등과 실패를 직접 겪으며 몸으로 익혔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과 타협하는 법, 억울함을 스스로 삭이거나 풀어내는 경험 하나하나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드는 자원이 되어준 겁니다.

문제는 요즘 세대입니다. 걸림돌이 나타나기도 전에 부모가 먼저 나서서 길을 평평하게 다져주는 '안전 최우선' 환경에서 자라면, 이런 단련의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합니다. 스스로 갈등을 헤쳐본 경험이 없다 보니, 성인이 되어 마주하는 평범한 스트레스조차 감당하기 벅찬 시련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전문가들이 방치나 무관심을 권하는 건 아닙니다. 핵심은 '적정 수준의 좌절'입니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어른은 위험을 미리 다 치워주는 '제설차'가 아니라, 아이가 넘어졌을 때 스스로 흙을 털고 일어나기를 묵묵히 지켜봐 주는 '인내심 있는 어른'입니다.

부모는 언젠가 반드시 자녀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모든 위험을 대신 막아주는 과보호가 아니라, 자녀가 "나는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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