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통상실시권, 군 납품에 한정…민수 납품은 특허 침해”

법원이 K5 방독면 국방규격에 반영된 방산업체 한컴라이프케어(구 산청)의 특허를 인정하고 경쟁사 SG생활안전(구 삼공물산)의 제품 생산·판매를 금지했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경찰청·소방청 등 군이 아닌 공공기관에 K5 방독면을 납품하려는 업체는 한컴라이프케어에 특허 실시료(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이번 판결은 국방규격에 반영된 특허기술이라고 해서 모든 국가기관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다만 SG생활안전이 특허 침해 여부와 방위사업청(방사청)·한컴라이프케어 간 특허 사용 계약의 적용 범위를 다시 다투겠다며 항소한 만큼, 두 방산업체의 법적 공방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15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61부(조희찬 부장판사)는 최근 한글과컴퓨터 자회사 한컴라이프케어가 CJ그룹 계열사 SG생활안전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SG생활안전의 특허 침해를 인정하고 국가정보원·대통령경호처 등 군 외 공공기관에 납품하는 K5 방독면과 정화통의 생산·판매를 금지했다. 또 특허 사용에 따른 부당이득 8800여만원과 지연이자를 한컴라이프케어에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SG생활안전 제품은 한컴라이프케어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한다”며 “일부 구조상 차이가 있더라도 과제 해결 원리와 작용효과가 동일해 특허 침해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특허발명이 적용된 K5 방독면이 국방규격으로 지정되면서 원터치식 결합, 자동 차단밸브 방식 채용 등이 이뤄져 정화통 교체 시간이 단축되고 오염 공기 유입이 방지되는 등 기술적 진보가 달성됐다”며 특허의 기술적 효과도 인정했다.
다만 특허 사용에 따른 ‘부당이득’은 일부 반환하라면서도 ‘손해배상’까지는 필요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SG생활안전은 방사청의 방위산업체 추가 지정과 경쟁입찰 등을 거쳐 제품을 생산·판매해 왔고, 이를 적법한 것으로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다”며 고의·과실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두 방산업체 간 분쟁은 K5 방독면 체계개발업체인 한컴라이프케어가 2015년 방산업체로 지정된 데 이어, 이듬해 SG생활안전이 추가 방산업체로 지정되면서 불거졌다.
한컴라이프케어는 타사를 방산업체로 추가 지정할 경우 ‘K5 방독면 국방규격에 포함된 자사 특허를 사용할 수 없다’며 방사청에 이의를 제기했고, 방사청은 2019년 한컴라이프케어와 ‘통상실시권 설정계약’을 체결해 방사청이 발주하는 방독면 사업에서 해당 특허를 사용할 수 있도록 사후 조치를 취했다. 통상실시권은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아 일정 범위에서 특허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SG생활안전은 이를 근거로 경찰청·소방청·대통령경호처·국가정보원 등 다른 국가기관 사업에도 통상실시권이 미친다는 취지로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그 효력이 방사청이 발주하는 군수품 조달사업에 한정된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계약의 내용과 체결 경위 등을 종합해 “방사청과 한컴라이프케어는 국방규격에 특허가 포함되면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상실시권 계약을 체결했다”며 “방사청이 입찰하는 방독면 사업에 한해서만 통상실시권을 설정할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국방규격이 적용되는 다른 국가기관 방독면 사업에 한컴라이프케어가 특허권을 행사하게 됨에 따라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을 경쟁입찰로 하는 취지가 훼손됐다고 하더라도, 이는 국방규격을 개정해 해결해야 할 것”이라며 “특허권을 행사하는 것이 권리남용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