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층수 제한·내홍 탓에 사업 지연
최고 49층·5850가구…2028년 착공 목표

강남 재건축의 '상징'이자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최대어인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마침내 23년 동안의 표류를 끝내고 본격적인 탈바꿈을 시작한다.
강남구는 5월 22일 조합이 신청한 은마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의 사업시행계획을 법정 처리기한보다 33일 앞당겨 최종 인가했다고 2일 밝혔다. 2003년 재건축 추진위원회 승인 이후 23년 만에 이뤄낸 행정 절차의 '가장 큰 산'을 넘은 것이다. 1979년 준공된 4424가구 규모의 이 거대 단지가 사업시행인가를 받기까지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대한민국 재건축 잔혹사 그 자체였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이 20년 넘게 공전한 배경에는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규제, 서울시와의 층수 갈등, 내부 주민 간의 극심한 대립이 복합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1996년 시공사인 한보그룹 주도로 첫 재건축이 계획됐으나 이듬해 한보 사태와 외환위기로 무산됐다. 이후 2000년대 초반 추진위 구성 전후로 은마아파트는 정부의 재건축 규제 타깃이 되며 안전진단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무려 세 차례나 안전진단에서 탈락한 끝에 첫 도전 후 8년 만인 2010년에야 네 번째 도전 끝에 가까스로 안전진단을 조건부 통과(D등급)할 수 있었다.
태생적인 한계도 발목을 잡았다. 1970년대에 지어진 다른 아파트들과 달리 은마아파트는 당시 기준으로 용적률을 204%까지 채워 지은 고밀도 단지였다. 이 때문에 재건축을 해도 일반분양 물량을 크게 늘릴 수 없어 사업성이 떨어졌다. 준주거지역 종상향이나 임대주택을 대거 넣는 조건의 공공재건축(용적률 500% 상향안) 등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주민 반대와 서울시의 이견으로 번번이 무산되며 오랜 시간 희망 고문이 이어졌다.
행정 규제와 대형 악재도 끊이지 않았다. 2006년 서울시가 단지 한복판을 관통하는 '15m 폭의 도로 계획'을 세우면서 대단지가 3개로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가 주민들이 9년여간 사투를 벌인 끝에 2015년에야 겨우 이를 폐지했다. 2017년에는 최고 49층 초고층 재건축을 고수하다가 서울시의 '35층 제한 룰'에 부딪혀 도시계획위원회 본회의에서 '미심의'라는 이례적인 처분을 받기도 했다. 결국, 주민투표 끝에 35층 안을 수용하며 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는 아픔을 겪었다.
여기에 내부 갈등까지 겹쳤다. 초대 추진위원장의 장기 집권과 150억원에 달하는 설계비 매몰 책임론을 두고 주민 간 소송전이 벌어졌다. 상가 소유주들과의 극심한 지분 갈등은 십수 년간 조합 설립 자체를 불발시키는 결정적 원인이 됐다. 최근에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 노선의 단지 지하 통과 문제를 두고 정부 및 시공사와 대립하며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돌발 악재가 이어졌다. 조합 설립 이후에도 반대파와의 소송전으로 인해 조합장 직무정지 사태를 맞이하는 등 마지막까지 내홍을 겪었다.

끝이 보이지 않던 사업은 최근 1~2년 사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35층 룰을 폐지하고 '신속통합기획 2.0'을 은마아파트에 전격 적용하면서 해묵은 과제들이 하나둘 풀렸다.
은마아파트는 2023년 정비구역 지정과 조합설립인가를 연달아 받아내며 해묵은 추진위 체제를 끝냈다.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정비 계획 변경을 결정 고시한 데 이어, 올해 2월 정비 사업 통합 심의를 통과시켰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번 사업시행계획 인가는 정비사업 단계별 표준 처리기한과 비교해 약 1년을 단축한 결과다.
사업시행계획에 따르면 은마아파트는 대지면적 24만3552.6㎡ 부지에 지하 6층~지상 49층, 공동주택 29개 동, 5850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재건축된다. 공공임대주택 909가구와 공공분양주택 195가구도 함께 공급된다. 주민 편의를 위한 공원, 공영주차장, 개방형 도서관 등 부대 복리시설과 공공개방 커뮤니티시설도 함께 조성될 예정이다. 특히 대치역 일대의 고질적인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4만㎥ 규모의 빗물 저류조도 단지 내에 설치된다.

강남구는 이번 인가를 계기로 민선 9기 핵심 공약인 재건축 신속 추진에 더욱 속도를 낼 계획이다. 구청장이 직접 단장을 맡는 '강남 재건축 신속화합(신화)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TF는 사업장별 공정관리와 관계기관 협의, 주민 소통, 전문가 자문 기능을 전담한다. 구청장이 사업별 쟁점을 직접 챙기고 지연 요인과 갈등은 초기 단계에서 조정해 주요 재건축 사업의 추진 속도를 높인다는 구상이다.
서울시 역시 은마아파트를 '핵심 공급전략사업'으로 선정해 잔여 공정을 밀착 관리하며 힘을 보탤 계획이다. 은마아파트는 향후 감정평가 및 조합원 분양신청, 관리처분계획 수립과 인가, 이주, 해체공사 등 후속 절차를 차례로 진행한다. 조합은 2028년 착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남구는 관계기관 협의가 필요한 사안은 선제적으로 지원해 후속 절차가 지체되지 않도록 뒷받침할 방침이다. 김현기 강남구청장은 "오래 기다린 주민들에게 재건축이 실제로 속도를 내고 있다는 신호가 되길 바란다"며 "구청장이 직접 챙기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속도와 결과로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최진석 서울시 주택실장은 "강남권 재건축의 상징인 은마아파트의 사업시행계획인가는 신속한 재건축 추진의 대표사례가 될 것"이라며 "서울시는 주택공급 걸림돌을 제거하여 주택시장 안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