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임미화의 부동산, 가격 너머] 정비사업, 속도 아닌 비용이 관건

입력 2026-06-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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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상승보다 추가분담금 걱정 커
공사비 급증에 현실적 압박 떠올라
장기상환 등 다양한 선택지 고려를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정비사업은 주택공급의 핵심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신속통합, 모아타운 등 이름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다. 낡은 주거지를 정비하고 도심 안에 새 주택을 빠르게 공급한다는 것이다. 공급 부족이 집값 불안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정비사업 속도를 높이려는 정책 방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장 시선은 예전과 다르다. 과거 재건축의 질문은 “얼마나 오를 것인가”였다. 지금은 “얼마를 더 내야 하는가”가 먼저다. 새 아파트에 대한 기대보다 공사비, 금융비용, 이주비, 추가분담금을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정비사업은 공공의 주택공급 수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민간의 부담 능력 위에서 작동한다. 조합원은 토지와 기존 주택을 제공하고, 시공사는 공사를 맡으며, 금융기관은 자금을 공급한다. 일반분양 수입은 공사비와 금융비용, 기반시설 부담, 공공기여 비용을 충당하는 재원이 된다. 이 구조가 맞아떨어질 때 사업은 움직이고, 어느 한 축이라도 흔들리면 정비사업은 멈춘다.

가장 큰 변수는 공사비다. 최근 여러 정비사업 현장에서 입찰 당시보다 큰 폭의 공사비 인상 요구로 조합원의 추가 부담은 현실이 되고 있다. 공사비 상승은 단순한 숫자 문제가 아니다. 공사비가 오르면 분담금이 늘고, 고령 조합원이나 장기 거주 1주택자에게 추가분담금은 투자비가 아니라 생계 부담이 될 수 있다. 집은 있지만 현금흐름이 약한 사람에게 정비사업은 자산 증식의 기회가 아니라 살던 동네를 떠나야 하는 압박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는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인허가 절차를 줄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자동차에 기름이 없는데 도로만 넓힌다고 차가 달리지는 않는다. 지금 정비사업의 문제는 행정절차뿐 아니라 비용구조에 있다. 공사비, 금융비용, 공공기여, 이주비, 분양시장 불확실성이 조합원 부담으로 전가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빠른 제도를 만들어도 실제 착공까지 이어지기 어렵다.

공공성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정비사업은 사적 개발이면서 동시에 도시 기반시설을 새로 짜는 공공적 사업이다. 임대주택, 도로, 공원, 생활SOC(사회간접자본)는 필요하다. 그러나 공공성이 필요하다는 말과 그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공공기여가 조합원 분담금이나 일반분양가에 전가된다면 사업성은 낮아지고 주민 갈등은 커진다. 공공성을 강화하려면 비용 배분의 원칙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시공사와 금융기관의 입장도 중요하다. 민간 정비사업은 조합만 원한다고 되는 사업이 아니다. 조합원은 분담금을 두려워하고, 시공사는 원가 리스크를 피하려 하며, 금융기관은 사업 지연과 미분양 위험을 따진다. 세 주체가 동시에 신중해지는 순간 정비사업은 속도를 잃는다.

따라서 정비사업 정책은 “얼마나 빨리 허가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하면 실제로 굴러가게 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공사비 검증의 실효성을 높이고, 공사비 조정 기준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며, 조합원 분담금 부담을 장기상환이나 금융지원 방식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고령 조합원과 장기 거주민에게는 잔류, 매각, 임대전환, 지분조정 등 다양한 선택지도 제공해야 한다.

정비사업은 도시를 새롭게 만드는 일이다. 하지만 그 엔진은 여전히 민간의 부담 능력 위에서 움직인다. 민간이 감당할 수 없는 구조에서 공급 확대를 외치는 것은 작동하지 않는 기계에 속도를 내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 정비사업의 속도전이 성공하려면 절차만 빠르게 할 것이 아니라 비용구조를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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