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어 도문(屠門)은 푸줏간 문을 가리킨다. 그 뒤에 대작(大嚼) 음식을 우걱우걱 크게 씹는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씹는다는 동작보다 침을 삼킨다는 뜻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러니까 푸줏간 문 앞에서 침을 삼킨다는 뜻이니 ‘한국인의 밥상’처럼 허균 선생이 쓴 전국 유명 음식 소개쯤 될 것이다.
이글은 허균이 풍족할 때 쓴 것이 아니라 봉고파직을 당해 귀양을 가서 가장 궁핍할 때 예전에 맛보았던 맛있는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오히려 음식에 대한 사치와 낭비를 경계하기 위해서 쓴 글이다. 그중에 참 재미있는 말도 있고 재미있는 소개도 있다.
허균은 시와 소설뿐 아니라 당시의 서얼 차별 등 사회제도에 대해서도 굉장히 개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문학으로는 자유분방함과 활달함이 먼저였다. 그래서 어떤 글에서도 자신의 감상과 속내를 꽤 솔직하게 드러낸다. ‘도문대작’ 역시 첫머리부터 식욕과 성욕은 본성이라고 말한다. 그중 식욕은 더욱 몸과 목숨에 관련되니 참으로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어떤 음식은 소박하고 어떤 음식은 화려하고, 또 어떤 음식은 맛보다 인생의 추억을 깊게 한다. 이 많은 음식 중에 허균의 소울 푸드는 고향 동해안 바닷가를 생각나게 하는 방풍죽이다. 소고기죽도 아니고 바다에서 잡은 생선죽도 아니고 바닷가 모래밭에서 뜯은 방풍나물과 밥알을 섞어 끓인 죽이다. 특별히 맛있는 음식도 아니지만 고향의 음식이고 어린 날 먹었던 음식이기에 소울 푸드인 것이다.
그 다음으로 소개하는 것이 전주의 백산자이다. 허균은 이 백산자를 전주의 것이 가장 맛있다거나 좋다고 말하지 않고 이걸 오직 전주에서만 만든다고 했다. 제조 방법을 보니 그동안 수백 년 세월이 흘러 전국으로 고루 퍼져서 오늘날 강릉 한과마을에서 이 백산자를 만들어 전국으로 판매한다. 도문대작에 나오는 백산자를 만드는 방법이나 강릉 한과마을에서 만드는 과즐의 제조 방법이 똑같다.
나도 어린 시절 설날이 되면 어른들이 이 백산자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찹쌀가루를 쪄서 절구에 넣어 꽈리 공기주머니가 생길 만큼 찧어서, 그걸 또 넓게 편 다음 조각조각 오려 말려서, 끓는 기름에 넣을 때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저마다 숟가락 두 개를 들고 기름에 부풀어 오르는 것과 동시에 쫙 늘려 백산자 바탕을 만든다.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전국적으로 확산된 음식이 있고, 그때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구경하기 어려운 음식도 있다.
많은 음식 중에 재미있는 것은 두부에 대한 기록이다. 허균이 어린 시절을 보낸 강릉 초당마을은 오늘날 두부마을로 유명하다. 그래서 허균의 아버지 허엽 선생이 초당두부를 만들었다는 낭설까지 나오는데 정작 그 아들 허균은 두부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애초엔 중국에서 만들기 시작한 음식으로 조선에서는 서울 도성의 사소문 중 하나인 창의문(자하문) 밖 사람들이 아주 잘 만들었다고 한다. 아마 세검정 물이 좋아서 두부도 맛이 뛰어났던 것이 아닐까.
책을 읽다 보면 음식 이야기 하나에도 역사가 담겨 있고, 세월의 흔적이 서려 있다. 먹는 것을 밝혀서 ‘한국인의 밥상’을 즐겨보는 것이 아니다. 음식이 우리의 삶을 말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