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하면 취소’ 제도 공백…사전판매·약관 해석 충돌로 피해↑

고유가와 고환율에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겹치면서 국제선 항공편 운항 차질이 잇따르자, 그 불똥이 여행업계와 소비자에게 튀고 있다. 항공사는 비용 부담을 이유로 노선을 줄이거나 중단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연쇄 피해를 조정할 제도적 장치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여행업계에 따르면 국제 유가 급등으로 연료비 부담이 커지면서 일부 노선은 운항이 중단되거나 감편됐고, 국내외 항공사 모두 수익성이 낮은 노선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문제는 항공권은 환불이나 대체편 제공이 가능하지만, 숙박·투어·렌터카 등 별도 계약으로 묶인 비용은 대부분 보상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이다. 환불 불가 조건으로 예약한 경우 소비자가 고스란히 손실을 떠안게 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여행사는 사실상 ‘완충 역할’을 떠맡고 있다. 항공편이 취소되면 여행사는 현지 호텔과 랜드사에 일일이 연락해 일정 변경이나 위약금 면제를 요청해야 한다. 하지만 해외 업체가 이를 거부할 경우 손실은 여행사나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항공사와 여행사 간 계약 역시 명확한 표준계약서 없이 관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책임 소재를 따지기도 쉽지 않다.
제도적 한계도 분명하다. 현행 항공사업법상 항공사는 운항 계획을 변경할 때 정부에 신고만 하면 된다. 연료 수급 문제나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사전에 신고할 경우 운항을 강제할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하다. 정부도 유관 부처를 통해 운항 여부를 관리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한 시장 충격이나 소비자 피해까지 통제할 수단은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노선 승인 이전 좌석을 미리 판매하는 관행도 피해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항공사가 최종 운항을 확정하기 전에 판매된 상품이 취소될 경우 행정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패키지여행의 경우 외교부 여행경보가 3단계 이상일 때만 위약금 면제가 가능하고, 그 미만에서는 소비자가 먼저 취소할 경우 수수료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항공권과 숙박은 사업자 약관이 우선 적용돼 환불이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신규 예약을 자제하고, 기존 예약은 성급히 취소하기보다 상황을 지켜보며 결항 통보서 등 객관적 자료를 확보할 것을 권고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전쟁 등 불가항력 사유로 항공편이 취소된 경우에는 항공사에 별도의 배상 책임을 묻기 어려워 소비자가 손해를 보전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다만 취소 사유가 항공사의 내부 사정이라면 책임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손해배상이나 정액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분쟁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을 때에는 민사소송을 통해 비용 보전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여행 업계 관계자는 “운항 취소에 따른 간접 피해 범위를 명확히 하고, 항공사와 여행사 간 책임 분담 구조를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라며 “승인 전 판매 노선까지 관리 대상에 포함하고, 운항 변경 시 일정 수준의 책임을 항공사에 부과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