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들, 소송 당하고 있다”…경영 판단마다 ‘배임 리스크’ [상법 개정의 역설]

입력 2026-04-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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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판단 이전에 주주들 눈치부터
경영상 결정마다 ‘충실의무’ 적용 무리

▲그래픽=김소영 기자 sue@
▲그래픽=김소영 기자 sue@

상법 개정 이후 기업의 지방 이전을 둘러싼 ‘배임 리스크’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국가 균형 발전과 주주 이익 보호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경영 판단이 법적 책임 문제로 이어지면서 기업의 의사결정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HMM 사례처럼 본사 이전을 둘러싼 의사결정이 곧바로 주주 이익 침해 여부로 연결되면서 경영 활동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재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은 정부의 지방 균형 발전 기조 아래 추진돼 온 사안이다. 해양수산부 역시 산하 공공기관과 해운기업의 부산 이전을 지원하기 위해 ‘이전 기업 지원 협의체(TF)’를 운영하는 등 정책적 뒷받침에 나서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책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수도권 집중 완화라는 장기적 정책 흐름 속에서 추진되는 사업이라는 측면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정책적 결정이 상법 개정안과 맞물리며 법적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HMM 육상노조는 본사 이전이 단기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배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나아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주주로 확대된 상법 개정안 취지에 비춰볼 때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결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손해배상 책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영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사례를 계기로 경영상 판단이 사법 영역으로 빠르게 편입되는 ‘경영의 사법화’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본사 이전처럼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결정이라 하더라도 단기적인 비용 증가나 인력 유출을 이유로 주주 이익 침해로 문제 삼을 경우 이사회는 법적 책임 방어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일시적으로 손해가 발생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이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손해 여부 자체도 판단이 쉽지 않은 사안인데 이를 배임으로 연결하면 경영진 입장에서는 사실상 어떤 의사결정도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본사 위치 결정은 본질적으로 경영상 판단의 영역으로 봐야 하는데 주주가 수시로 바뀌는 상황에서 이를 충실의무 위반으로 일률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법 개정안 시행 이후 이사회 내부 의사결정 과정이 위축되는 사례도 전해진다. 한 회사에서는 사외이사들이 충실의무 위반 논란을 의식해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경영진 안건에 동조할 경우 주주 이익 침해로 공격받을 수 있고, 반대로 경영진의 판단에 반대할 경우 이사회와 경영진 간 관계 때문에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못 하고 방어적이고 안전한 선택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에서는 사외이사를 상대로 주주가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회사의 결정으로 주주 손실이 발생했을 때 해당 안건에 찬성한 이사를 상대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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