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 생성·실험 설계까지…기존 AI와 차별화
향후 업계의 인력 구조와 R&D 전략 변화 전망

의료영상 판독과 신약개발에 집중됐던 인공지능(AI)이 연구 설계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데이터 분석을 넘어 가설 생성과 실험 설계까지 수행하는 이른바 ‘AI 과학자’ 개념이 등장하면서 연구개발(R&D) 방식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00일 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제약‧바이오 분야에서 AI는 주로 신약개발 과정의 특정 단계에 활용돼 왔다. 단백질 구조 예측, 신약 후보물질 발굴, 임상 데이터 분석 등 개별 영역의 효율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됐고 의료 분야에서는 영상 판독 보조가 중심이었다.
최근에는 이러한 흐름에서 한 단계 나아가 AI를 활용해 연구 과정 전반을 자동화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스스로 가설을 도출한 뒤 실험 설계와 결과 해석까지 하나의 플랫폼에서 수행하는 ‘AI 과학자’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
연구 현장에서의 활용 가능성도 도입 초기 단계를 넘어 성과 창출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실제 지난달 일본 AI 기업 사카나AI는 연구 아이디어 생성부터 논문 작성까지 전 과정을 AI로 수행했고 이렇게 생성된 논문이 심사를 거쳐 네이처에 게재됐다. 사카나AI는 자체 개발한 플랫폼을 통해 연구 아이디어 생성부터 실험 설계·실행, 결과 해석, 논문 집필, 피어 리뷰까지 과학 연구의 전 주기를 수행했다.
연구 설계형 AI는 신약개발 AI와 유사해 보이지만 역할이 다르다. 기존 AI는 단백질 구조 예측이나 화합물 스크리닝 등 연구 과정의 특정 단계를 지원했다면 연구 설계형 AI는 가설 설정부터 검증, 의사결정까지 연구 전 주기를 조율한다. 시뮬레이션 결과를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데이터를 통합해 타깃을 도출하고 전임상 실험 프로토콜까지 제안한다.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실패 데이터까지 학습해 다음 가설의 정확도를 높인다는 점도 차별화 요소다.
국내에서도 관련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바이오넥서스와 아스테로모프는 연구 설계형 AI를 기반으로 한 바이오 연구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논문·실험 데이터 등을 통합 분석해 가설 생성과 연구 설계, 데이터 분석을 수행하고 AI 기반 실험 설계 기술을 통해 연구 조건을 최적화하며 반복 실험을 줄이는 접근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바이오 연구의 구조적 한계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신약개발은 평균 1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지만 성공 확률은 낮다. 연구 초기 단계에서의 가설 설정과 실험 설계가 성패를 좌우하는 만큼 AI을 활용해 연구 방향을 최적화하면 개발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태형 바이오넥서스 대표는 “초기 가설 수립부터 유의미한 후보물질 도출 및 1차 검증까지 보통 2~3년이 걸리던 탐색 과정을 1~3개월 이내로 압축할 수 있다”며 “연구원이 직접 수백 번의 매뉴얼 실험을 거치며 소요되는 비용과 인건비, 시간적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어 신약 개발에서 실패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연구 설계형 AI가 확산되면 바이오산업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제한된 인력과 자원을 가진 중소 바이오텍도 AI 기반 플랫폼을 활용해 연구 효율을 높일 수 있어서다.
김 대표는 “단순 반복 실험을 수행하는 매뉴얼 연구 인력 비중은 줄고 AI가 제시한 가설을 해석하고 연구 방향을 총괄하는 도메인 전문가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며 “R&D 전략도 초기 후보물질을 빠르게 확보해 기술이전하거나 포트폴리오 다각화 중심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