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먼 바다 건너에서 벌어진 일이 일상까지 흔드는 데는 며칠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순히 군사적 충돌이 벌어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바닷길이 막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것도 세계 에너지 물동량의 5분의 1이 거쳐감에 따라 세계 5대 해협 중에서도 가장 핵심으로 꼽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이 봉쇄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실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이 이란의 공격을 받자 국제유가는 급등하고 해상 보험·운임이 치솟았다.
이는 사람과 상품, 자본이 바다를 안전하게 가로질러 이동할 수 있는 ‘항행의 자유(Freedom of the Seas)’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다가 언제나 안전한 통행로일 것이라는 가정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바다는 원래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해적과 사략선이 상선을 공격했고, 세계대전 같은 대규모 전쟁은 해상 무역을 마비시켰다. 그러다가 17세기 네덜란드 상선 네트워크가 세계 교역을 확장했고, 19세기에는 영국 해군이 바다를 지배하면서 세계화의 첫 물결이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 해군이 전 세계 해상 교통로를 사실상 관리하며 세계화를 떠받쳐 왔다. 해양 패권이 안정되면서 세계 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글로벌 공급망 형성도 가능케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세계 경제의 동맥이라 할 해상 통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불안해지고 있다. 이란 전쟁뿐 아니라 2023년 이후에는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홍해 항로가 마비됐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는 전쟁 지역으로 변모했다.
동시에 강대국들은 해상 통로에 대한 ‘영유권적 태도’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 북극 항로 일부가 자국 통제하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해협과 남중국해에 대한 통제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기 취임 연설에서 파나마 운하를 다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세 가지 흐름이 겹쳐 있다. 첫째 지정학적 경쟁의 부활이다. 냉전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기치로 상대적으로 안정됐던 해양 질서는 중국, 러시아 등의 도전으로 다시 긴장 상태로 돌아갔다.
둘째 미국 해군력의 약화다. 미 해군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지만 함선 보유 대수가 냉전 시대와 비교해 반토막이 나는 등 압도적 우위는 점차 축소되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 조선업은 수년간의 투자 부족으로 사실상 붕괴 상태에 있다. 또한 미군 홀로 전 세계를 동시에 관리하기에는 작전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졌다.
셋째는 치명적 저가 기술의 확산이다. 드론과 저비용 미사일, 해상 무인체계는 과거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해상 교통을 위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에 ‘해양 혼란의 시대’가 다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렇게 그동안 당연했던 ‘안전한 바다’가 흔들리자, 주유소 앞 긴 줄처럼 그 충격은 일상으로 번지고 있다. 동시에 우리가 익숙하게 누려온 저렴하고 안정적인 물류의 시대 역시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