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임채운의 경영직설] ‘을’ 각성해 한국형 갑질 막아내야

입력 2026-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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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문화·조직·개인이 복합작용한 병리
계급 사회일수록 관행화돼 나타나
권력횡포 깨려면 乙 반격 많아져야

해가 바뀌어도 갑질은 끊이지 않는다. 갑질한 게 드러나 신세를 망친 사람들이 많은데도 여전히 갑질은 성행한다. 지금도 장관 후보자와 여당 전 원내대표가 갑질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된 여성 국회의원은 보좌진 갑질 문제에 걸려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최초의 현역 의원이 되었다.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도 8년 전 인턴 직원에 대한 폭언이 공개되며 그 여파로 낙마했다. 국회 권력의 정점인 거대 여당의 원내대표는 부인의 보좌진 갑질이 불거져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고 당에서도 쫓겨났다.

잊힐 만하면 터지는 정치인의 갑질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이번 갑질 사건의 주인공들이 속한 여당은 휴먼 에러라고 변명한다. 개인적 일탈이라는 것이다. 시민단체와 언론은 시스템 에러가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모두 맞는 답이다. 갑질은 사람과 조직 두 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이에 더해 문화도 영향을 준다. 갑질은 단순하지 않다. 문화, 조직, 개인의 세 가지 차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인 것이다.

사실상, 갑질은 한국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우리는 학교에서부터 갑질을 당하거나 행하며 자란다. 왕따와 폭력은 학교에서 자행되는 보편적 갑질이다. ‘일진’이라 불리는 학폭집단이 학교를 장악하던 시절에 학생들은 두 패로 갈렸다. 때리는 아이와 맞는 아이로. 아이들이 처음에는 맞는 쪽에 속하다 나중에는 때리는 쪽으로 옮겨간다. 군대에 가서는 신병 시절에 얼차려에 시달리다 고참이 되면 신참 괴롭히는 재미로 말년을 보낸다. 직장에 근무할 때는 상사 눈치 보며 살아야 한다. 일을 서툴게 하거나 성과를 못 내면 욕이 쏟아진다. 여자는 결혼해 시부모 갑질을 감수하며 시집살이 산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일방적으로 비용을 전가하거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불공정거래도 전형적 갑질이다. 한국적 문화의 특징으로 K-갑질이 워낙 유명해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 ‘gapjil’이라는 영어 단어가 등재되기도 하였다.

갑질은 개인의 인권보다 공동체의 획일적 가치관을 더 중시하는 문화에서 관습처럼 행해진다.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소속감과 결속력을 높이는 방편으로 갑질이 통용되기도 한다. 일본의 ‘이지메’(집단따돌림)는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집단적 갑질 행위이다.

흥미롭게 다민족 국가에서는 갑질이 드물다. 다른 인종의 사람에게 갑질하면 인종 차별로 오해되어 인종 간 분쟁으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국가이며 좁은 땅에 많은 인구가 살아 경쟁이 치열하고 스트레스 강도가 높다. 학교에서의 성적 순위에서 대학 입시, 취업 시험, 승진 고과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경쟁에 얽매여 산다. 내가 성공하려면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성공한 사람이 승자의 우월감을 과시하는 방식이 갑질로 표출된다.

한 문화 안에서도 조직과 시스템에 따라 갑질 정도가 다르다. 대체로 폐쇄적이며 계급이 엄격한 수직적 조직에서 통제와 복종을 명분으로 갑질이 관행처럼 이뤄진다. 군대, 병원, 대학, 국회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군대에서는 군기 확립을 내세워 갑질이 행해진다. 여군에 대한 성추행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도 군대라는 특수성에 기인한다. 병원에서는 간호사 간에 직급 서열에 따라 괴롭히는 ‘태움’이라는 악습이 존재한다. 선임 간호사가 하급 간호사를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울 정도로 혹사한다는 의미이다. 대학에서는 논문 지도를 무기로 석박사 학생에게 온갖 궂은일을 시키고 제대로 보상해 주지 않는 교수가 상당수다. 국회는 의원이 보좌진의 채용부터 면직까지를 혼자 결정하니 왕이나 마찬가지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의원들은 짧은 기간에 수십 명의 보좌진을 면직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면직당하지 않으려면 무슨 일을 시켜도 군소리 없이 감당해야 한다. 이 정도면 시스템 에러가 아니라 시스템 부재라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의 갑질이 빈번한 이유는 분명히 휴먼 에러에 있다. 의원직은 권력의지가 강한 사람만이 쟁취할 수 있는 자리이다. 권력욕이 약해서는 절대로 국회의원이 될 수 없다. 권력지향적 사람은 권력의 맛을 경험하려는 성향을 가진다. 자신의 요구에 상대방이 순응하는 모습을 보며 권력의 위력을 실감한다. 당연히 갑질의 충동을 강하게 느끼게 된다. 권력형 갑질의 특징은 상대방이 하기 싫어하는 것을 강제하는 것이다. 원하는 행동을 시키는 것은 권력이 아니다.

권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파격적이며 탈법적인 갑질을 추구한다. 그런 권력자를 제어하는 시스템은 없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 정치인의 갑질은 한마디로 권력의 남용인데 그 권력을 견제할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정치인의 갑질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등장할 것이다. 결국, 권력자의 횡포를 막는 길은 갑질 당한 ‘을’들이 반격을 가하는 것밖에 없다. 이번에 논란이 된 국회의원들이 저지른 비리는 모두 과거 보좌진의 제보에 의해 드러났다고 한다. 갑질을 오래 참고 견딘 을의 복수가 통쾌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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