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험자본 인프라가 본격 가동되는 국면에서 금융당국이 자본시장 전반에 구조적 신뢰 개선 신호를 던지고 있다. 사모펀드 운용사(PEF)들의 운용 관행을 바로잡는 수준을 넘어 연기금·공제회 등 대형 수탁자의 책임 구조까지 함께 손질해 모험자본 생태계 전반을 다시 짜겠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불거진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자본시장 신뢰를 다시 쌓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해 '생산적 금융 대전환' 회의에서 대형 투자은행(IB)의 모험자본 공급 확대와 함께 PEF 제도 개선, 스튜어드십 코드 내실화 방향 등을 한꺼번에 꺼내 들었다. 단기적인 공시 강화나 규제 확대보다는 글로벌 시장과의 정합성을 고려해 ESG, 책임투자 체계, 투명한 운용 관행을 제도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모험자본 생태계의 핵심축인 PEF 운용사들은 지난해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사태 이후 신뢰도가 크게 훼손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홈플러스가 기업 회생절차에 들어가며 PEF의 인수금융 관행을 둘러싼 논란이 커졌고, 이에 금융당국은 기관전용 PEF 제도 개선을 통해 운용사의 책임성과 내부 통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방안을 냈다.
구체적으로는 PEF의 책임성 및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금융회사 수준의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운용사에 부과하고 중대형 운용사에는 내부통제 업무를 총괄하는 준법감시인을 선임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이다. 동시에 모든 PEF의 운영 현황과 투자·인수한 기업의 주요 경영정보도 보고 대상에 포함된다. 차입 한도는 현행처럼 순자산의 400%로 유지하되, 200% 초과 시 사유와 향후 관리 방안 등을 보고하도록 할 예정이다.
연기금과 공제회 등 PEF 출자기관(LP)에 대한 압박도 동시에 커졌다. 당국은 기관투자자가 수탁자로서 책임을 갖고 지속 가능한 성장 분야에 투자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의 이행점검 체계를 도입하고, 적용 범위도 확대한다. 단순히 수익률을 기준으로 투자 결정을 내리는 것을 넘어, 투자 대상의 지배구조와 장기 가치에 관한 판단 책임이 제도적으로 강화되는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은 모험자본 확대 국면과 맞물린다. 대형 IB가 3년간 20조 원대 모험자본 공급에 나서는 상황에서 자본시장의 신뢰가 흔들리면 자금 유입은 오히려 투자 위축으로 돌아온다. 인공지능(AI), 첨단 제조와 같은 전략 산업에 돈을 더 붓는다면, 그 돈이 굴러가는 PEF와 수탁자의 시장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투데이 자문위원인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그동안 한국 자본시장은 성장 속도와 비교하면 책임과 윤리 체계가 뒤따르지 못했다”며 “PEF 운용사와 수탁자 모두에게 명확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모험자본 시장의 신뢰도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