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실체 없는 AI 혁신⋯피지컬로 승부하라 [리코드 코리아①]

입력 2026-01-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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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도시 전체 'AI 실험장' 구축
경험 축적 우선 실증 지원 나서
일본, 뿌리기술 토대 AI 이식 속도
글로벌 제조업 대전환 반격 준비
'실체 없는 AI 혁신' 한국에 경고

▲화면 속 인공지능(AI)이 주는 환상은 끝났다. 이제는 AI가 로봇의 팔과 자동차의 바퀴를 통해 현실을 바꾸는 '피지컬 AI' 시대다. 생성형 AI의 거품이 걷히고 실체적 하드웨어 경쟁이 본궤도에 오른 지금, 대한민국은 제조 강국의 DNA를 '실행하는 지능'에 이식해야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쳇 GTP 생성 이미지.
▲화면 속 인공지능(AI)이 주는 환상은 끝났다. 이제는 AI가 로봇의 팔과 자동차의 바퀴를 통해 현실을 바꾸는 '피지컬 AI' 시대다. 생성형 AI의 거품이 걷히고 실체적 하드웨어 경쟁이 본궤도에 오른 지금, 대한민국은 제조 강국의 DNA를 '실행하는 지능'에 이식해야 하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쳇 GTP 생성 이미지.

거대한 도시 전체를 ‘인공지능(AI) 실험장’으로 탈바꿈 시켜 미국 실리콘밸리를 위협하는 중국, 속도는 더디지만 강력한 제조업 현장에 AI를 녹여내며 ‘탄탄하고 치밀한 AI 전략’을 구축한 일본. 글로벌 AI 패권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한국 AI는 지금 ‘속도의 혁신’과 ‘실체의 현장’이라는 두 갈래 길 위에 서 있다. 규제의 빗장을 풀고 데이터의 바다를 유영하는 중국의 공격적 행보와, 탄탄한 제조 경쟁력을 바탕으로 AI의 점진적 내재화를 꾀하는 일본의 여유 사이에서 한국만의 ‘K-AI’ 돌파구는 어디에 있는가. 본지가 이 두 나라를 직접 찾은 이유는 명확하다. 혁신의 속도와 산업의 내실이라는 양극단의 전략 사이에서 한국 AI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지난해 12월 중국 광둥성 선전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400m ‘대나무(Bamboo) 타워’ 주변으로 텐센트와 화웨이·BYD·DJI 등의 중국 대표 기업들의 건물을 중심으로 야경이 펼치지고 있다. (중국(선전)=김연진 기자)
▲지난해 12월 중국 광둥성 선전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400m ‘대나무(Bamboo) 타워’ 주변으로 텐센트와 화웨이·BYD·DJI 등의 중국 대표 기업들의 건물을 중심으로 야경이 펼치지고 있다. (중국(선전)=김연진 기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400m ‘대나무(Bamboo) 타워’ 주변으로 텐센트와 화웨이·BYD·DJI 등의 거점이 끝없이 펼쳐진다. ‘중국의 실리콘밸리’ 선전은 더 이상 단순한 IT 도시가 아니다. 탄탄한 제조업의 토양 위에 AI를 실시간으로 이식하며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 AI 실험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선전에서 AI는 산업 현장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응용 도구로 인식됐다. 실패조차 국가적 자산으로 치환하는 과감한 실증 지원과 AI인재들의 거침없는 창업 열기로 들끓고 있다. 현재 선전은 기업의 성패보다 경험의 축적을 우선하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AI 전초기지로 탈바꿈시켰다.

정부가 판을 깔고, 기업은 그 위에서 마음껏 질주한다. 선전을 관통하는 핵심은 명확한 정책 방향과 반복 가능한 실험 구조가 결합된 ‘AI 생태계’였다. 산·학·연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연구실의 AI를 산업 현장으로 빠르게 이식하는 선전은 이미 중국 정부의 ‘AI+’ 전략의 거대한 실증 무대로 진화했다. AI+는 모든 산업과 사회 구조에 AI를 이식해 국가 전체의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개조하겠다는 거대한 청사진이다. 공고한 제조업 기반 위에서 AI를 통한 생산력 혁신을 현재진행형으로 일궈내는 속도는, 치밀한 내실을 다지는 일본과 함께 한국 AI를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속도전에 매몰된 글로벌 시장을 향해 일본은 ‘AI 도입이 늦었다고 조바심낼 필요는 없다’는 역설적으로 가장 서늘한 경고장을 던진다. 일본은 세계 최강의 ‘제조업 엔진’에 AI라는 소프트웨어를 얹는 가장 치밀하고도 탄탄한 ‘AI 실전 전환’ 역습을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사활을 건 ‘속도전’에 매몰된 사이, 일본은 그 폭풍의 한복판에서 기묘할 만큼 차분했다. 지난 연말에 개최된 도쿄 iREX 전시장에는 최첨단 AI를 전면에 내세운 화려한 구호 대신, 수십 년간 세계 시장을 지배해온 화낙과 야스카와, 가와사키중공업·나치후지코시·미쓰비시전기 등 ‘로봇 거인’들의 묵직한 하드웨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국과 미국, 중국이 AI 혁신에 조바심을 낼 때, 일본은 이미 독보적 지위를 굳힌 ‘뿌리 기술’의 토대 위에 AI를 조용히 이식하고 있다. 세계 표준으로 통하는 압도적 정밀 제어와 하드웨어 신뢰성. 일본의 여유는 바로 이 탄탄한 제조업 기반에서 비롯된 ‘준비된 자신감’이었다. AI를 단순한 구호가 아닌 실전용 무기로 변모시키는 일본의 치밀한 내실은, 현장의 실체 없는 혁신에 목매는 한국 AI 산업에 묵직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3~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로봇전(iREX2025)에서 가와사키중공업이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사용되는 로봇을 선보이고 있다. (도쿄(일본)=이수진 기자)
▲지난해 12월 3~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로봇전(iREX2025)에서 가와사키중공업이 자동차 생산라인에서 사용되는 로봇을 선보이고 있다. (도쿄(일본)=이수진 기자)

일본이 그리는 AI의 미래는 화려한 담론이 아닌, 로봇의 근육과 감각을 깨우는 ‘실전 기술’에 있다. 음성을 즉각 로봇 명령어로 변환하는 LLM(대형언어모델)부터, 스스로 장애물을 회피하는 자율주행, 생산 규격 변화에 따라 설계를 스스로 최적화하는 자동 조정 시스템까지. iREX 현장에서 확인한 AI는 연구실의 언어가 아니라, 제조업의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가장 강력한 ‘현장 도구’였다.

도시 전체를 거대 실험장 삼아 광속으로 질주하는 중국 선전, 독보적인 제조업 뿌리 기술 위에 치밀하게 AI 지능을 얹는 일본의 ‘조용한 자신감’은 한국 AI를 향한 뼈아픈 경고장이다. 실험실에 갇힌 이론을 넘어 AI를 산업 현장의 실전 무기로 변모시킨 두 강국의 역습 사이에서, 대한민국 AI 산업은 이제 ‘속도’와 ‘실체’라는 두 갈래 생존 방정식을 증명해야 하는 냉혹한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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