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 1963' 우지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해시태그]

입력 2025-11-2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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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1963' 우지라면 파는 곳·우지라면 편의점이 뜬 이유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즐거웠던 추억이 돌아왔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그래도 내 속에 자그마한 따스함을 내줬던 친구였는데요. 갑자기 흉흉한 소문과 함께 자취를 감추어버렸던 그였죠. 그동안의 맘 고생을 털어냈는지 예쁜 새 옷을 입고 찾아왔는데요. 두 팔 벌려 담백한 인사를 건네려 했는데, 이미 한발 늦었습니다. 저마다의 화려함을 가진 다양한 인사법이 이미 점령해 버렸거든요.


(연합뉴스)
(연합뉴스)


삼양식품이 36년 만에 우지를 다시 불러냈습니다. 한때 기업의 명운을 뒤흔든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재료였는데요. 이제는 소비자들의 손에서 국밥으로, 샤부샤부로… 금기의 우지가 본격적으로 밥상 무대를 되찾았죠.

삼양 우지라면으로 불리는 ‘삼양1963’는 단순한 신제품이 아닌데요. 신작이 아닌 귀환이죠. 1989년 11월 3일에 시작된 이른바 ‘우지파동’은 삼양을 순식간에 추락시켰습니다. 비식용 우지를 썼다는 투서가 검찰에 접수되며 삼양은 공업용 기름을 사용했다는 혐의로 대대적인 수사에 휘말렸고 언론은 ‘비누용 기름 라면’이라는 자극적 문구를 쏟아냈는데요.

실제로는 우지의 위해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정제 전 단계의 비식용 분류를 문제 삼은 무리한 수사였다는 점이 훗날 밝혀졌죠. 하지만 불매와 비난 속에서 삼양라면은 매대에서 걷어내야 했고 100만 박스 이상을 폐기했습니다. 시장점유율은 30%에서 10%대로 추락했고 1000명이 넘는 직원이 회사를 떠났는데요. 1997년 대법원 무죄 판결이 나오기까지 8년이 걸렸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쉬이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삼양 내부에서 우지는 사실상 금기 단어가 됐는데요. 창업주에게는 끝내 풀지 못한 한이었죠.



2025년 삼양이 우지를 다시 꺼내 들 수 있었던 건 ‘완벽한 자신감’입니다. 바로 압도적인 ‘불닭’의 성공 덕분이죠. 불닭볶음면은 삼양이 한때 오뚜기에도 밀려 3위로 내려앉고 신제품마다 고전하던 시기에 돌연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입니다. 그야말로 회사를 멱살 잡고 다시 끌어올린 주역인데요. 매운맛 라면이라는 좁은 틈 시장에서 시작했지만 까르보불닭 등 파생 라인업이 연달아 성공하며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는데요.

월마트 등 해외 마켓에서 판매가 기준 국내보다 두 배 비싼 가격에 팔리며 수익성을 끌어올렸습니다. 덕분에 올해 삼양식품은 3분기 해외시장에서 매출 5105억 원을 거뒀는데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늘어 분기 최대 실적을 기록했죠. 불닭 인기에 삼양은 올해 3개 분기 연속 영업이익률 20%를 넘기며 식품업계에서 보기 드문 고수익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 ‘여유’ 속 아픈 손가락을 꺼내볼 수 있게 됐죠.



삼양1963의 핵심은 ‘골든 블렌드 오일’로 불리는 우지·팜유 배합 기술인데요. 과거처럼 4:6 비율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우지 비중을 대폭 늘리면서도 안정성과 풍미를 모두 잡는 최적점을 찾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표현했죠. 분말수프 대신 액상수프를 선택한 이유도 우지 특유의 향과 맛을 더 온전히 담기 위해서인데요. 국물에서 고소함과 장터특유의 칼칼함이 동시에 밀려올 수 있게 우지에 진심을 담았습니다.

맛은 전반적으로 ‘리뉴얼 이전 삼양라면’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반응이 많은데요. 우지의 고기 향은 기존의 쇠고기라면보다 더 두텁게 깔리고, 후첨 분말을 넣으면 청양고추가 매운맛을 확 끌어올립니다. 이 후첨 분말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빼고 먹으면 고깃국 느낌이 도드라지고 넣으면 칼칼함이 살아나는 이중 구조 덕분에 조리법 확장성이 넓은데요.


(출처=유튜브 캡처)
(출처=유튜브 캡처)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계란 넣으면 밸런스 정리된다”는 조언부터 “밥 말아 먹으면 딱”이라는 반응 등이 올라오고 있죠. 우지라는 재료가 가진 본질적 특성 덕분에 ‘요리의 재료’가 되기 좋은 구조로 설계됐다는 평입니다.

이 지점이 삼양1963의 폭발적 확산을 설명하는 핵심인데요. 지금 숏폼에는 장터국밥라면, 차돌라면, 뚝배기 우지라면, 우지전골라면 등 레시피 공유 영상이 끝없이 생성 중입니다. 먹을 것에 진심인 민족답게 ‘맛있는 건 당장 공유’라는 너그러운 마음이 더해졌죠.

라면 위에 차돌박이·소고기 편육을 올려 ‘고기라면’으로 재해석하거나 유명 샤부샤부 브랜드 맛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샤부샤부 라면’도 나왔고요. 묵은지를 송송 썰어 넣어 ‘장터김치우지라면’으로 만들고 아예 밥을 먼저 말아 ‘국밥모드’로 끓인 레시피도 등장했죠. 덕분에 ‘우지라면 파는 곳’, ‘우지라면 편의점’ 등이 검색어에 올랐는데요. 오프라인 판매를 시작했지만 넘치는 기대감에 실물을 보지 못한 소비자들이 넘쳐났습니다.

불닭 시리즈가 각종 레시피 확산을 발판 삼아 브랜드를 키운 것처럼, 삼양1963 역시 소비자가 스스로 커스터마이징을 만들어내는 모디슈머(modify(수정하다)와 consumer(소비자)의 합성어, 평소에 친숙하게 먹던 음식들을 조합하여 나만의 음식으로 바꾸는 것) 흐름 속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는데요.


▲독일 쾰른에서 열린 '아누가 2025' 삼양식품 부스 전경. 불닭 캐릭터 호치와 외국인 남성 방문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배근미 기자 athena3507@)
▲독일 쾰른에서 열린 '아누가 2025' 삼양식품 부스 전경. 불닭 캐릭터 호치와 외국인 남성 방문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배근미 기자 athena3507@)


사실 불닭볶음면을 둘러싼 조리법은 사실상 백과사전 수준이죠. 액상 소스를 덜 넣는 기본기부터 치즈·계란을 더한 ‘불계치’, 우유·두유·생크림과 섞는 크림 버전, 참기름·돼지기름·올리브유를 활용해 캡사이신의 공격성을 낮추는 방법까지… 집집마다 자신만의 ‘불닭 공식’을 만들어냈는데요. 이렇게 소비자들이 만들어낸 레시피는 결국 삼양의 공식 제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치즈불닭, 까르보불닭, 짜장불닭, 커리불닭 등 파생 상품의 상당수는 커뮤니티에서 검증된 조합을 따라간 상품이죠.

삼양은 이처럼 불닭에서 얻은 교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불닭은 처음엔 매니악한 제품이었지만 각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조리법이 곧 브랜드를 확장했죠. 결국 그 확장성이 글로벌 흥행을 이끌었는데요. 삼양1963도 현재 같은 흐름을 타고 있는 셈이죠. 우지의 풍미 덕분에 라면이 아닌 ‘국물 요리의 베이스’로 쓰이기 시작했고 이미 시장에서는 없는 조리법들이 소비자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요. 이런 조리 문화의 확산은 결국 재구매율로 이어집니다.


(정영인 기자 oin@)
(정영인 기자 oin@)


이 패턴은 오뚜기 열라면의 ‘순두부 열라면’ 열풍과도 닮았는데요. 순두부 열라면 레시피가 SNS에서 폭발적으로 퍼지며 열라면 매출이 전년 대비 37% 상승했던 2021년의 흐름이 삼양1963에서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재현되고 있죠.

우지파동은 긴 세월 동안 삼양에 뼈아픈 상처였는데요. 36년 만에 다시 끓인 우지, 시장은 그 국물을 다시 자기 방식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불닭볶음면을 치즈·계란·삼각김밥·짜장라면·냉면 육수와 끝없이 섞어왔던 손들이 이번엔 우지 국물 위에서 또 다른 실험을 시작했죠. 새로운 국물 한류, 이제 ‘먹잘알’ 소비자들의 차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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