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의 자유냐 환자의 건강권이냐"… 온병원, 정문 시위에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

입력 2025-10-0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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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병원 앞에 불법 천막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온병원)
▲온병원 앞에 불법 천막시위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온병원)

부산의 중견 의료기관 온병원이 자신들과 무관한 기업 간 분쟁으로 병원 앞에서 이어지는 시위 탓에 환자 치료 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며 법원에 ‘집회 및 시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와 의료기관의 평온권·환자의 건강권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례로 법조계의 관심이 쏠린다.

온병원(병원장 김동헌·전 부산대병원 병원장)은 8일 "지난달 15일부터 주식회사 케이알케이산업 관계자들이 부산진구 가야대로 721 병원 정문 앞에서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며 "이는 병원과 무관한 기업 분쟁을 이유로 한 부당한 행위"라고 밝혔다.

시위 참가자들은 'A산단 하도급대금 체불'을 주장하며 현수막을 설치하고 확성기로 민중가요를 틀며 항의 중이다. 그러나 온병원 측은 "이 문제는 B건설과 케이알케이산업 간 민사 분쟁일 뿐, 의료법인인 병원은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반박했다.

문제는 소음 피해가 병원 내부로 직접 전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온병원이 자체 측정한 결과, 시위 현장의 소음은 73.5데시벨(dB)로 '소음·진동관리법'이 정한 병원 인근 허용기준(65dB)을 크게 초과했다.

이로 인해 병실 안에서도 확성기 소리가 들리고, 일부 환자들은 불면증·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전원을 요청하는 상황이다. 의료진도 집중 진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외래 환자와 보호자들의 통행마저 방해받고 있다.

온병원은 이 사태를 단순한 항의 수준이 아닌 '의료행위에 대한 실질적 방해'로 판단해 지난달 말 부산지방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신청서에는 병원 건물 및 부지 경계로부터 200m 이내에서 현수막 설치, 천막 설치, 확성기 사용 등 소음을 유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1회당 100만원의 간접강제금을 부과해 달라는 조항이 담겼다.

온병원 측 법률대리인 한원우 변호사(법무법인 담헌)는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하지만 타인의 생명권과 인격권을 침해할 정도로 행사될 수는 없다"며 "의료기관은 생명을 다루는 공간으로, 환자의 안정과 회복이 최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민원 갈등을 넘어 헌법적 가치의 경계선에 선 사례로 본다.

헌법 제21조는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병원이나 학교 등은 공공성과 특수성이 인정되는 장소로, 집회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내놓은 바 있다.

실제 법원은 비슷한 사안에서 제한을 인정해 왔다. 서울행정법원은 2016년 판결에서 "병원 앞 확성기 시위는 환자의 안정과 치료환경을 해치므로 제한이 정당하다"고 판시했고, 부산지법도 2023년 "의료기관과 무관한 분쟁을 이유로 한 시위는 집회의 자유의 한계를 벗어난 행위"라고 판단했다.

법조계는 이번 부산지법의 결정이 '표현의 자유'와 '공공의 생명권' 사이의 균형점을 새롭게 제시할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은영 변호사(법무법인 제유)는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지만, 병원과 같이 생명을 다루는 공간에서는 예외적으로 다른 기본권보다 우선될 수 있다"며 "이번 사건이 헌법상 권리 간 충돌에 대한 실무적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온병원의 집회금지 가처분 첫 심리는 오는 16일 오후 3시 부산지법 317호 법정에서 열린다.

결정 결과에 따라 향후 의료기관 인근 시위의 법적 기준이 새롭게 정립될 가능성이 있다.

김동헌 병원장은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2천여 명 환자의 생명과 건강권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병원이 논쟁의 장소가 아니라 치유의 공간임을 사회가 다시 인식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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