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AI도 못하는 남다른 공감 능력, 여성 리더십 원동력 됐죠”[K 퍼스트 우먼③]

입력 2025-10-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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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10-09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공채 1기로 입사, 국내 10대 로펌 최초 여성 경영대표 변호사 자리 올라
‘손해 보는 리더십’으로 공감·신뢰 이끌어...동료애 특히 중시해
보수·남성 중심의 법조계도 혁신 기로...‘성별 고정관념’ 바꿔 변화의 바람
AI 시대, 네트워크 활용이 대체불가능한 가치...젊어지는 로펌 만들고파

옛 초등학교 국어책의 등장인물 ‘철수와 영희’. 추정컨대 철수는 국내 최다 성씨인 김철수였을 테고, 영희는 그 다음 많은 성씨인 이영희가 아니었을까. 공교롭게 국내 10대 로펌(Law Firm) 사상 첫 여성 대표는 이영희 변호사다. 국어책 속 영희처럼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 소개했지만, 법조인으로서 그의 행보는 남달랐다. 사법연수원 동기들이 모두 검사, 판사를 꿈꿨지만 그는 과감히 로펌행을 택했다. 지금은 공직을 떠난 동기들마저 자리를 탐 낼 정도로 사세를 키웠다. 모두가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말할 때, 그는 ‘손해 보는 리더십’을 택했다. 오지랖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공지능(AI)이 법조계를 흔들고 있지만, 그는 AI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따뜻한 인류애와 진정성 있는 네트워크, 그리고 견고한 신뢰의 힘을 믿는다. 그것이 평범한 이름을 가진 그를, 보다 특별하고 남다른 이영희로 만드는 원동력이 됐다. ※대담=석유선 생활경제부장

▲이영희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프로필 (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그래픽 신미영 기자)
▲이영희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 프로필 (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그래픽 신미영 기자)

“특출난 능력이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

이영희 ‘법무법인(유한) 바른(바른)’ 대표는 이처럼 자신을 소개했다.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사법시험에 합격, 바른 공채 1기 변호사로 입사한 그는 20여 년 만에 국내 10대 로펌 사상 첫 여성 대표변호사가 됐다. 남다른 성취의 이면에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언제나 ‘평범한 꾸준함’에서 찾는다.

법조인의 길, 아버지의 믿음이 밑거름

“여자가 어떻게 법조인이 될 수 있지?” 어린 시절 친구들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그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버지 덕분이다. “여자도 다 할 수 있다. 넓게 생각하고 꿈을 크게 가지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이런 부친의 말씀은 그에게 (제 꿈을) 믿고 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됐다. 아버지는 그의 첫 번째 서포터였다.

학창 시절 그는 특별한 ‘스펙’을 쌓지 못했다. 그런데도 과외 한 번 받지 않고 이화여대에 합격했고, 제39회 사법시험도 합격했다. 이후 사법연수원을 거쳐 2000년 바른 공채 1기로 입사했다. 합격한 공채 1기는 딱 2명이었는데, 다른 동기도 여성이었다. 바른을 창업한 선배들은 그렇게 ‘여성의 힘’을 일찌감치 알아본, 그에겐 두 번째 서포터였다.

“깡촌 출신이 이대 법대에 가고 사시도 패스했으니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받은 것 같다.” 겸손함까지 겸비한 이 대표는 굵직한 사건을 단박에 맡게 됐다. 2001년 ‘이용호 게이트’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수사관으로 활약한 것. 당시만 해도 여성 변호사들이 주요 사건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새내기 변호사임에도 중요 사건 한 복판에서 단단히 성장할 기회를 얻은 셈이다.

당시엔 일이 많아 회사의 파견 제안을 고사하려 했었다. 하지만 당시 바른에 있던 고(故) 정귀호 전 대법관이 적극 추천해 마음을 고쳐 먹었다. 전관 출신이 아닌 어소 변호사(Associate Lawyer)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란 게 그의 ‘고집’이었다. 선배의 고집은 그의 인생을 바꾼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설립 초기 13명에 불과했던 바른은 현재 소속 변호사만 280명 규모로 훌쩍 성장했다. 이 대표는 “회사와 제 성장 과정이 겹친다”면서도 내일의 도약을 생각한다. “함께 자랐기에 바른의 장점을 활용해 어떻게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한다.”

“손해 보는 선택이 바른 길⋯젊은 세대 위한 변화 택해”

▲이영희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가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바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이영희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가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바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의사결정을 하거나 이해가 충돌할 때는 손해 보는 쪽을 선택하면 된다.” 이 대표는 바른의 선배 변호사들에게서 배운 이와 같은 경영 철학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다. 놀랍게도 정말 그렇게 방향을 정하면 모든 게 원만해졌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바른도 최근 몇 년간 혁신의 기로에 섰다. 매출 정체와 인력 이탈 문제로 조직이 활력을 잃던 시기, 이 대표는 거버넌스 개혁에 깊이 관여했다. 예전엔 회사 운영위원회가 전관 위주로 구성됐던 바른이었지만, 다양한 세대의 의견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파트너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운영위를 꾸렸다. 그 결과 막내(변호사)들이 선배들에게 반박도 하고 토론이 훨씬 치열해졌다. 이 대표는 “거버넌스가 바뀐 이후 1년차부터 성장한 친구들이 운영위원·이사진의 과반이 됐다”며 “아쉬운 건 아직도 여자는 저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여성 리더십, ‘당연하지 않은 것’을 바꾸는 것

이 대표가 경영대표로 선출됐을 때, 바른 내부에서는 ‘변화의 신호탄’이란 평가가 나왔다. 이에 부응하고자, 그는 조직 내 뿌리 깊게 박힌 성별 고정관념을 하나씩 바꿔 나갔다. 그는 “여직원은 비서, 남직원은 실무자란 고정관념이 있지만 그것을 당연시 하지 않았다”며 “능력 있는 직원은 성별 상관 없이 관리자급으로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첫 변화의 시도는 호칭에서부터 나왔다. 아예 ‘여’직원이란 표현을 없애고 ‘스태프’로 통칭하는 지침을 세웠다. “제가 리더가 되니까 보이더라. 남성 시각에서 당연한 것들은 당연하지 않은 거다. 당연하지 않으면 바꿔야 한다.”

여성 대표의 상징성과 무게감을 그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 전체를 볼 때 여전히 ‘냉정한 현실’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 대표는 “규모가 더 큰 로펌에서 경영에 참여하는 여성 파트너들이 많아져야 유리천장이 제대로 열렸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김앤장이나 태평양, 광장 같은 로펌은 아직 남성 중심적 의사결정 구조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20여년간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법조계에서 고군분투해온 이 대표의 리더십은 ‘공감’과 ‘신뢰’, 두 키워드로 압축된다. “MBTI가 ENFJ”라는 그는 무엇이든 문제가 생기면 그냥 듣고 넘어가지 못하고 해결해줘야 직성이 풀린다. 어소 시절 힘든 일이 있어도, 차마 어디에 말도 못 꺼낸 경험이 있기에, 그는 기꺼이 후배들에게 든든한 대나무 숲이 되어주길 마다하지 않는다.

이 대표는 늘 후배들에게 “성장통은 대나무 마디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 성장통을 이겨내야 쭉 뻗은 탄탄한 대나무가 되기 때문이다. 조언의 마무리는 항상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면 결국 길이 열린다”로 귀결된다.

조직 내 신뢰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은 단호하다. 그는 “굶어 죽더라도 같이 죽을 수 있는, 같이 열심히 하는 동료가 있어야 한다”며 “술 한잔 하며 얘기도 나눌 수 있는 서로 간의 신뢰, 회사에 대한 믿음이 특히 중요하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위기와 압박의 순간, 서로를 지켜주는 동료 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강한 메시지다.

대체불가능한 법조인⋯“네트워크가 곧 생존력”

▲이영희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가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바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이영희 법무법인 바른 대표변호사가 서울 강남구 법무법인 바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사진=신태현 기자 holjjak@)

AI의 발전으로 법조계도 큰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AI는 판례 검색, 계약서 작성, 간단한 자문 업무까지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이 대표는 이 흐름을 인정하면서도 변호사가 갖춰야 할 ‘대체불가능한 가치’를 강조했다. “전문성은 기본이고 네트워크가 곧 생존력”이라는 그는 “모든 사람은 언제든 도움이 될 수 있다. 네트워크를 잘 형성한 뒤 자신만의 능력을 마케팅하는 게 낫다”고 했다. 특히 여성은 특유의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네트워크 파워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이 대표는 개인의 성취보다 공동체의 성장을 우선시하는 사람이다. “돈 1000억 원을 혼자 갖는 것보다 100명이서 10억 원씩 나누는 게 더 값지지 않겠냐”는 그다. 기쁨을 함께 나누고 힘들 때 서로 의지해 털고 일어나는 동료애 역시 그에겐 대체불가능한 가치다.

이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도 자신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그의 평범함은 꾸준함과 신뢰, 공감의 리더십으로 20여년 간 남다르게 커졌다. 그것은 바른 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성장케한 동력이 됐다. 그 동력의 바통을 후배들에게 올곧이 전하고 싶은 그다. “제가 여기서 성장했고 선배들이 잘 키워서 물려받았으니, 다음 후배들에게 잘 안착시키고 싶다. 보다 젊어지는 로펌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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