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현장에서 되풀이되는 산업재해를 끊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동시에 칼을 빼 들었다. 국회에서는 이달 들어 현장 안전 및 처벌 관련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고 고용노동부는 과징금과 등록 말소까지 포함한 고강도 제재안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제도 중복에 따른 이중규제 우려와 현장 실효성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1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들어 총 8개의 산업안전보건법 및 관련 법률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부분별로 살펴보면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복적인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주에게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냈다. 반복사망 자체를 별도 제재 대상으로 규정해 기업의 안전관리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급박한 위험’이 아니더라도 근로자가 위험을 감지하면 작업을 중단할 수 있도록 하고 근로자대표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게도 대피 지시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은 실습 중심의 안전보건교육을 확대하고 사업주가 작업중지 현황을 주기적으로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같은 입법 흐름과 맞물려 고용노동부도 15일 ‘산업재해 예방 및 재발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에 따르면 연간 3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한 법인에는 영업이익의 최대 5% 또는 최소 3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3년 이내 두 차례 영업정지를 받은 사업장은 등록 말소 대상이 된다.
또 그간 ‘동시 2명 이상 사망’ 사고에만 국한됐던 영업정지 요건도 ‘연간 반복 사망사고’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도 기존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에서 ‘급박한 위험의 우려(유해·위험 발생이 농후한 경우)’까지 넓혀 보다 선제적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와 정부의 대응을 묶어보면 크게 △반복사망 제재 강화 △원청 책임 강화 △작업중지권 확대 로 정리된다. 핵심은 처벌과 책임 강화를 통한 압박이지만 작업중지권과 같은 일부 제도는 예방적 기능을 보완하려는 성격도 담겼다.
다만 입법과 행정 조치가 상당 부분 겹치면서 이중 규제 논란이 제기된다. 가장 직접적인 중복 우려는 과징금이다. 장철민 의원 안과 노동부 대책은 모두 ‘반복 사망사고에 과징금 부과’를 담고 있어 법안이 통과되면 형사처벌과 행정제재가 동시에 적용되는 중복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원청 책임 강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원청 건설사가 하청업체에 산업안전보건관리비를 의무적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이미 중대재해처벌법이 경영책임자에게 포괄적 안전 확보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기존 제도의 허점을 메우는 보완책 성격이 강하지만 원청 입장에서는 의무가 중첩되는 이중부담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작업중지권 강화는 국회 발의안과 정부 대책 모두 담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국회는 요건 완화와 권한 대상을 넓히는 데 방점을 찍었고 노동부는 근로감독관에게까지 작업중지 명령 권한을 부여했다. 하지만 제도의 틀이 확대돼도 노동자들이 실제로 불이익 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입법과 행정이 동시에 추진된다는 점은 의미가 크지만 중복 규제와 실효성 한계를 동시에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반복사망 과징금, 원청 책임 확대 등 방향성은 옳지만 이미 시행 중인 제도와의 관계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이중규제 논란이 불가피하다”며 “입법과 행정이 따로 움직이지 말고 정합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