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율 동반 상승 건전성 악화⋯손실흡수능력 한계치 도달 우려

국내 주요 은행의 자산건전성 지표가 올해 상반기 들어 뚜렷하게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정이하여신(NPL) 잔액은 전년 동기 대비 1조 원 넘게 증가했고 연체율도 전 은행에서 일제히 상승했다. 은행들이 부실채권을 대거 상·매각하며 대응하고 있지만 손실흡수능력을 보여주는 NPL커버리지비율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는 등 리스크 대응 능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고정이하여신 잔액은 총 4조9014억 원으로 1년 전(3조7658억 원)보다 1조1356억 원(30.1%) 증가했다.
지난 1년간 증가율은 KB국민은행을 제외하고 3대 은행이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잔액도 각각 1조 원을 넘어섰다. 하나은행은 8190억 원에서 1조2400억 원으로 51.4%의 증가율을 보였다. 신한은행은 8653억 원에서 1조1956억 원으로 40.5%, 우리은행은 7520억 원에서 1조510억 원으로 39.6% 각각 증가했다. 반면 KB국민은행은 1조3295억 원에서 1조4148억 원으로 6.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연체율도 모든 은행에서 상승했다. 우리은행은 0.30%에서 0.40%로 0.10%포인트(p) 오르며 4대 은행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어 하나은행(0.27→0.35%)이 0.08%p, 신한은행(0.27→0.32%) 0.05%p, KB국민은행(0.28→0.31%)이 0.03%p 상승했다.
고정이하여신과 연체율이 동시에 나빠진 것은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차주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은행이 위험을 조기에 감지해 대출을 보수적으로 분류한 영향도 일부 있지만 실제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부실 확대는 고금리 장기화와 내수 경기 둔화의 여파로 풀이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실적 악화에 더해 건설·숙박·도소매업 등 경기 민감 업종을 중심으로 부실이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연체율 상승은 단기적인 충격보다는 누적된 리스크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신호다.
문제는 은행들이 상반기 중 대규모 부실채권을 털어냈음에도 자산건전성 지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4대 은행은 상반기 중 약 3조800억 원 규모의 고정이하여신을 상각하거나 매각했지만, 고정이하여신 대비 대손충당금 규모를 나타내는 NPL커버리지비율은 오히려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2023년 말 245.25%였던 커버리지비율은 올해 6월 말 기준 164.89%까지 떨어졌다.
NPL커버리지비율이 낮다는 것은 부실이 현실화될 경우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충당금 여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주요 시중은행은 리스크를 조기에 인식하고 여신을 보수적으로 분류한 결과 수치가 일시적으로 나빠진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지만 시장에선 부실이 생기는 속도가 은행이 정리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도 자산건전성 리스크에 대한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NPL커버리지비율 하락과 연체율 상승을 주요 점검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필요 시 충당금 적립 기준이나 여신 분류 체계를 손질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하반기 전면 시행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와 경기 침체 장기화로 인한 중소기업 부실 우려가 가시화될 수 있는 만큼 리스크 요소는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금리 방향성과 실물경기 흐름에 따라 연체와 부실 리스크가 더 확대될 수 있다”며 “은행권도 건전성 지표를 면밀히 점검하면서 고위험 차주나 업종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