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도시’가 ‘국가’보다 낫다

입력 2025-06-26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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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평가기관 ‘스타트업 지놈’이 발표한 ‘글로벌 창업생태계 보고서 2025’에서 서울시가 창업하기 좋은 도시 8위에 올랐다. 아시아 대표 창업 도시인 싱가포르(9위)와 도쿄(11위)를 제치고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고무적인 소식을 접하면서 한 핀테크 스타트업 대표의 절규가 떠올랐다. 그는 “미국에서 3개월 만에 승인받은 사업을 한국에선 권한을 쥔 정부 부처랑 싸우느라 몇 년을 허비하고 있다”며 “적자로 버티고 있는데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실제 생존 성적표는 형편없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5년차 스타트업 생존율은 29.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훨씬 낮다.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수는 더 초라하다. 2023년 기준 글로벌시장에서 한국 유니콘 비중은 1.2%에 그쳤다. ‘도시’가 틔운 창업의 싹을 ‘국가’가 키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권한을 독점한 ‘국가’가 행동하는 ‘도시’의 발목을 잡은 건 한두 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도시 생존을 위협하는 거센 파고가 몰려오는 요즘, 그 심각성은 더 커지고 있다. 극단적 기후변화의 파괴력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시대, 도심은 건물을 잡아야 온실가스 배출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건물 에너지사용량 관리 권한은 법령상 서울시가 아닌 산업통상자원부에 있다. 에너지이용합리화법 35조에 따르면 산업부 장관은 건축물의 단위면적당 에너지사용 목표량을 정해 고시해야 한다. 온실가스 주배출원인 에너지사용 한도를 정하도록 한 것인데, 1995년 7월 법이 제정됐지만 서울시 요청 이후 지난해 2월에야 관련 기준을 고시했다.

서울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건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67.9%로 가장 높다. 반면 국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에너지(37.5%), 산업(35.1%), 수송(14.3%), 건물(7.1%) 순이다. 건물 온실가스 관리만큼은 '국가'보다 '도시'가 더 절박한 셈이다. 서울시의 오랜 설득 끝에 2024년 산업부가 해당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아직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도시의 급속한 고령화도 마찬가지다. 서울은 7월 인구 20% 이상이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2040년엔 해당 비율이 31.6%까지 치솟아 심각한 초고령화가 예상된다. 서울의 고령 인구 증가는 가속이 붙었지만, 돌봄 요양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신규 부지 확보조차 어려운 서울시는 일정 세대 이상 공동주택을 지을 때 관련 시설을 의무화하는 묘책을 내놨다. 문제는 역시 법령이다. 1991년 제정된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100세대 이상 주택단지에 설치할 수 있는 주민공동시설을 경로당, 어린이놀이터, 어린이집, 주민운동시설 등으로 정해놓고 있다. 서울시는 여기에 노인요양시설, 데이케어센터(주야간보호서비스)를 넣어달라는 입장이다. 다급한 서울시와 달리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전국적 영향 등을 고려해 법 개정에 소극적이다. 시대 변화 반영에 더딘 ‘국가’가 ‘도시’의 절박함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주요 도시와 비교해 서울만큼 ‘손발이 묶여 있는 도시’도 없다. 중앙정부의 권한과 법률에 종속돼 주도적으로 정책을 만들고 운영하기 어렵다. 권한만 쥐고 관심 없는 ‘국가’보다, 절박하면서 혁신으로 무장한 ‘도시’가 해결사로 나설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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