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트럼프 vs 하버드’ 전쟁

입력 2025-06-0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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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완섭 재미언론인

하버드대 정치학과 강의실.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는 최근 수업 시작 전 “하버드가 싸울 때가 됐다고 결정한 것 같다”며 총장의 서한을 낭독했다. 100여 명의 학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응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하버드대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전 세계 교역국과 관세를 무기로 벌여온 게 글로벌 무역전쟁이라면 이번엔 자국 대학을 상대로 내전을 벌인 꼴이다.

전면전으로 확산된 것은 지난달 말.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하버드대에 정부 지원금 중단과 함께 유학생 불허 방침을 통보하면서부터다. 하버드는 이에 불복, 연방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정부의 시도는 일단 중단됐다.

싸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백악관은 즉각 성명을 통해 “하버드가 진즉부터 캠퍼스내 반미, 반유대주의, 테러 선동가들을 막는 노력을 해왔다면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유학생 불허 방침엔 제동이 걸렸지만 하버드는 30억 달러 규모의 정부 지원금이 끊겼고, 면세지위도 박탈당할 처지다. 아무리 530억 달러의 기부금을 보유한 세계 최대규모의 대학이지만 막대한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전체 학생의 27%에 이르는 7000여 명의 유학생들이 내는 등록금도 학교 재정에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학교측이 감수해야 할 재정적 손실은 클 수밖에 없다.

‘反유대주의 척결’ 명분 고강도 대학 규제

트럼프 정부가 사립대학에 초강경 조치를 취한 이유는 반유대주의 근절에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가자지구 전쟁을 기화로 하버드, 컬럼비아대 등 미국 주요 대학 캠퍼스에서 반유대주의 시위가 확산되기 시작했고, 트럼프가 무리한 제압에 나서면서 대학과 갈등이 촉발됐다. 트럼프는 시위 주동자들이 유학생이라고 단정, 학교 측에 유학생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고, 학교 측은 무리한 요청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따랐다고 주장했으나 국토안보부는 답변이 불충분하다며 극약처방을 내린 것이다.

아이비 리그 대학들을 ‘마르크스주의 광신도’라고 지칭해온 트럼프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연방 기관들을 총동원해 하버드에 대해 8건의 조사를 명령했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 연합 태스크포스팀을 결성, 교수와 학생들의 이념을 감시하는 데 착수했다. 군사정권 시절 한국에서나 벌어질 법한 학원사찰과 감시 조치들이 잇따라 취해진 것이다.

트럼프의 공세를 막아서는 데 가장 앞장선 이는 앨런 가버 총장. 가버 총장은 공개 서한을 통해 “정부가 사립 대학의 교육 방식, 학생 선발 방식, 연구 분야 등에 간여해서는 안 된다”며 저항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대학 교수와 경영진도 정부의 조치는 고등교육 기관으로서의 사명과 독립성을 유지해온 388년 하버드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라며 가버 총장의 입장을 지지했다.

“부당 간섭” 반발에 정치적 패착 우려 커져

시민들도 일제히 한목소리를 냈다. 가뜩이나 무역전쟁을 위시한 트럼프의 독단적 조치들이 가져온 불협화음에 스트레스를 받아온 터. 분노의 폭발력은 날로 커졌다. 하버드가 트럼프의 뜻에 굴복하면 최고의 고등 교육기관으로서의 자격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한번 양보하면 더 많은 요구를 하게 될 것이라며 하버드로 하여금 정부와의 전쟁에서 물러서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분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비록 후폭풍을 맞을지언정 관세전쟁이야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가 아니어서 개인이 개입할 여지가 많지 않지만 이번 싸움은 다르다. 내 자녀의 문제일 수도 있고, 표현과 학문,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는 위헌적 조치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반역사적 사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쏜 직격탄이 세계 최고 대학 하버드를 갖고 있다는 미국인들의 자부심에 깊은 내상을 입혔음 직하다.

하버드대에 본때를 보여줌으로써 대학을 길들이고, 반유대주의를 척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트럼프의 화살은 빗나가고 있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트럼프의 ‘깜짝쇼’가 멈추기는커녕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독재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반트럼프 진영에서는 슬슬 탄핵 카드를 꺼내 보이고 있다. 자칫하면 정치적 패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어리석음을 트럼프가 범하질 않기를 바란다. wanseob.k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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