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짜장면과 단무지

입력 2020-01-1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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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연말 이사로 정신이 없었다. 버리고 버려도 끝나지 않는 이삿짐의 불가사의를 체험하던 중, 식사 시간이 돌아왔다. 일을 멈춘 식구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짜장면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문지 위에 펼쳐진 음식은 ‘짜장면과 단무지’,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이다. 짜장면과 단무지는 한국 음식인가?

단무지, 다꾸앙은 일본 음식이다. 일본 스님 다꾸앙이 무를 소금과 식초에 절여 만든 소박한 사찰 음식에서 유래했다. 일본 다꾸앙과 한국 단무지는 모양과 맛이 다르다. 교토 니시키시장의 츠케모노 가게에서 보았던 다꾸앙은 우리 단무지보다 색이 더 진하고 겉면도 할머니 손등처럼 쪼글쪼글 주름이 잡혀 있다. 우리 단무지는 아삭하지만 일본 다꾸앙은 쫄깃하다. 짜장면도 중국의 자장면에서 유래했다. ‘자장면’은 장을 볶은 면이란 의미로, 산둥(山東)과 베이징(北京) 곳곳에서 자장면 전문점을 볼 수 있다. 몇 년 전 베이징에서 처음 맛본 원조 자장면은 맛났지만 낯설었다. 삶은 면 위에 볶은 춘장을 얹은 모습은 우리 간짜장과 비슷했지만, 춘장 색깔도 다르고 무엇보다 채소와 고명은 장 위에 따로 얹혀 나왔다. 고기와 채소를 자작하게 한꺼번에 요리해서 면 위에 올리는 우리 짜장면과는 달랐다.

둘의 공통점은 그 음식의 장점을 살리되, 우리 식으로 재해석했다는 데 있다. 비빔면에 가까운 자장면이 물기가 흥건한 짜장면이 되었고, 오돌오돌한 식감의 다꾸앙은 사각사각한 단무지가 된 것이다.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를 제패한 반도체와 미디어·콘텐츠 산업도 본질은 다르지 않다. 모방에서 출발했기에 시작은 조악했지만, 우리 식의 강점을 가미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었고, 지금도 그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경쟁력의 본질은 속도와 조화였다. 반도체는 진화와 도태의 갈림길에서 한 수 빠른 선제적 투자로 경쟁자를 퇴출하고,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다. K-POP은 J-POP을 향한 흠모에서 출발했지만, 이제 BTS라는 아시아를 넘어서는 글로벌 스타를 배출하고 있다. 분야는 다르지만, 세계를 제패한 두 산업의 공통점은 바로, 들여온 기술 및 콘텐츠를 우리 식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바로 ‘빨리빨리’와 ‘어우러짐’의 문화이다. 짜장면과 단무지는 그러한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 설렁탕을 떠올리면 된다. 국밥 한 그릇에 깍두기가 빠질 수 없듯이, 짜장면에 단무지도 그런 느낌이다.

한국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50여년간의 고도성장을 견인했던 속도와 어우러짐의 문화는 적폐로 몰려 폐기되고 있다. 국민 스스로가 느끼는 삶의 질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명분 앞에 ‘속도’는 뒷순위로 물러났다. 성장 일변도의 정책이 우리에게 준 부작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제도는 그 나라의 사람들의 사유 습관, 다시 말해 문화와 정치권력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성장이 앞서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소주성’에서 ‘포용적 성장’으로 정책 슬로건이 바뀌었고, 강한 재정집행도 예정되어 있지만, 정책 결정자의 사유는 여전히 지난 50년의 성과를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나아질 것이다. 2019년 경제성장률을 1.93% 수준으로 예상하는데 2020년은 2.1% 수준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의 재정 일자리 증가로 고용지표는 개선되고 있고, 돈을 더 풀기에 더 나아질 것이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실제 체감경기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체감경기는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경기가 확장되어 소득이 증가하거나, 정부의 세금이 줄어들어 개인이 얻는 소득이 높아져야 한다. 빈부 격차가 어느 정도 해소됐는지로 체감경기 상승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소득분포 하위 90%의 소득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고, 상위 10%에게 세금을 높이는 것도 이해가 가는 정책이지만 체감경기라는 것은 결국 소득 중위권의 소득과 소비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중산층의 체감경기가 좋아질 수 있는 정책이나 모멘텀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포용적 성장 정책은 투자의 DNA, 바로 성장 속도를 복원시키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규제를 풀고, 돈의 흐름이 민간투자로 향하는데 여기에 걸림돌이 있다. 바로 부동산을 향한 자금 흐름이다. 12·16 부동산 대책으로 대출길이 막히는 상황에서도, 서울시 청약경쟁률은 10년래 최고치인 31.7을 기록했다. 아마도 정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심리를 잡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간 정책 평가로 본다면, 세 부담을 늘려 부동산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이 주가 될 것 같고, 공급확대 정책은 내놓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강남 아파트 가격을 보면서, 어떻게 집을 마련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일반인들은 더 많아지고 격해지는 감정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일 뿐이다.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좋은 위치에 좋은 물건을 공급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어떤 이도 임대주택에 살기보다, 자기 집을 갖고 싶어 한다. 감정에 호소하는 정책이 우리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다시 욕망의 DNA를 자극해야 한다. 돈이 풀리고, 좋은 물건이 더욱 희소해지면, 돈의 쏠림이 더욱 심해지는 현상은 바뀌지 않는다. 현재 대부분의 부동산 정책은 수요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고, 특히 규제를 통해 대출을 통제하는 방향이다. 이는 대출할 방법이 생기거나 대출규제가 풀리면 언제든지 상승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하다. 중산층이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한국 경제는 정부지출을 늘려야 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내수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 어느 요인을 살펴봐도 정부가 왜 주택공급에 소극적인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 지역이 아닌 서울 중심지 부동산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다. 당장 부동산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생길 수 있지만 내 집 마련, 삶의 터전을 원하는 중산층의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짜장면과 단무지가 우리 삶에 깊이 들어온 건, 우리 민족성과 궁합이 맞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빨리빨리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구, 치열한 생존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발 물러서라도 타협할 수밖에 없는 문화가 그러하다. 아쉽게도 이제 이러한 장점은 비난의 영역이다. 성공을 향한 집념은 탐욕으로 배척되고, 타협은 진영논리의 적으로 낙인찍힌다. 한쪽에게 확실히 나쁜 놈이 돼야 마음 편한 세상이다. 주위에 점점 더 입을 닫고 사는 이가 늘어난다. 어우러짐이라는 우리 사회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당구장에서 짬짬이 먹는 짜장면만큼 맛난 음식도 없다. 즐기는 게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했기에 한국의 반도체와 K-POP이 존재한다. 개인도 다르지 않다. 행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닌, 만드는 것이다. 그 시작은 개인의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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